그냥 노트

드라마 <역적>과 80년 광주

얼마 전, 모 단체에서 기고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 몇자 썼던 것을 보고 모 단체의 지인이 기고를 요청한 것이다. 드라마 <역적>과 80년 광주항쟁을 엮어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짧은 글이었기 때문에 쓰기로 했지만, 사실 별로 쓸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글은 다 쓰고 송고를 했는데, 내 작문실력이 그리 좋지 않은 까닭, 그리고 분량을 다소 초과한 까닭에 상당부분 편집되어 돌아왔다. 편집된 글은 좀 더 읽기 쉽게 바뀌었고, 좀 더 선동적으로 되었으며, 내 주장과도 사뭇 다르게 돌아왔다. 약간의 조율 끝에 내 주장이 조금 더 반영된 글이 돌아왔는데, 어쨌거나 편집된 글은 상당부분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나는 초고 이후로는 몇가지 의견만 더 전달했을 뿐, 수정은 철저히 모 단체의 지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실 나는 글이 수정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는데, 바쁘기도 했지만 작은 일에 투닥거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없이 수정하도록 용인하였다. 그리 고집을 부릴만큼 명문도 아니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나는 글을 쓸 때 번역투의 문장도 많이 쓰는데, 번역투의 문장들도 고쳐져 돌아왔다. 그러나 사실 나는 어딘지 딱딱한 대신 조금 더 차분하게 들리는 내 번역투의 문장이 좋은 것이 사실이다. 


어디 올릴 곳도 없으니, 초고는 블로그에나 게시하기로 했다. 편집된 글은 모 단체에 5.18 광주항쟁 날짜를 맞춰 해당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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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역적>과 80년 광주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의 등장은 꽤 고무적이다. 언론에서는 일명 ‘사이다’ 드라마로 소개하면서 속 시원한 사극으로 소개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사극은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받아왔다. 일찍부터 한류를 일으켰던 <대장금>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까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방영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사회 대부분의 사극에서 그러하듯이 역사는 언제나 임금과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왔고,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종종 선/악 구도로 표현되어 왔다. 물론 이는 사극이 아닌 현대극의 다른 드라마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드라마 <역적>의 등장이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왕조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서 일반 민중의 삶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 드라마 <추노> 이후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드라마 <역적>은 노비 아모개(김상중 역)의 아들로 태어나 ‘아기장수’의 힘을 갖고 태어난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 역)은 방물장수로, 그리고 왈패로 생활하다가 민중들의 고난을 목도하고 임금과 결전하는 의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과 왈패 패거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자신과는 아무 연고 없는 민중들을 구하려고 고난을 불사하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고을 ‘향주(香州)’의 의미는 특별하다. 연산군(김지석 역)은 백성들이 자신을 비판하고 의적 홍길동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비판적인 고을이었던 향주를 반역의 고을로 명하고 관군을 보내어 나라에 저항하는 백성들을 모두 참하도록 한다. 저항세력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본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에 홍길동과 향주의 백성들은 백성을 죽이는 국가와 군대는 자신들의 국가와 군대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관군과 맞서 결사항전을 한다. 연산군은 ‘향주’로 가는 모든 길목을 봉쇄하고 향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을 밖으로 전달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입막음을 시킨다. 또한 약탈과 방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반란의 고을로 소문을 내고 있는데, 실상은 마을을 지키는 관군 한 명 없이 향주는 부족한 물자를 서로 균등하게 나누고 범죄 한번 일어나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통제하는 사회가 실현된 것이었다.


여기서 고을 ‘향주’가 오늘날 ‘광주’와 그 어감이 비슷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80년 5월 18일 00시 신군부 세력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공수부대가 광주로 투입된다. 공수부대는 학생들, 이후에는 그밖에 시민들을 무참하게 탄압하였다. 신군부는 광주시민들을 의도적으로 더 잔혹하게 탄압하여 폭력을 전시했다. 이에 분개한 광주시민들이 시민군을 조직하여 군부대에 저항하였고,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군대가 광주시청을 완전히 진압하기까지 10일 간의 격렬한 항전이 지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광주는 신군부에 의해 봉쇄되었고, 언론은 통제되었다. 광주시민들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스스로 자신들의 투쟁이 가지는 정당성을 고취하였는데 , 언론에서 광주는 ‘폭도들’의 무법지로 묘사되었다. 


‘광주 혹은 향주’를 둘러싼 성격은 놀랍게도 두가지로 극명하게 대립한다. 첫번째는 유토피아적 공동체로서 해방구이고, 두번째는 외부와의 단절과 고립이었다. ‘광주 혹은 향주’에서 시민들은 신군부 혹은 관군과 맞서 단지 살기 위해 스스로 연대하며 어떤 공동체를 실현하였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고립과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말하자면 유토피아적 공동체로서 ‘광주 혹은 향주’의 시민들이 쟁취했던 ‘소외의 해방’은 공교롭게도 외부와의 극단적인 고립, 다시 말해서 ‘외부로부터의 소외’와 중첩되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극적인 대립이 서로 어떤 인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신군부와 연산군의 봉쇄와 탄압이 광주와 향주의 시민들을 스스로 연대하게 만들었을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이들의 항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소외와 고립으로부터 해방을 필요로 했다.


‘향주’는 오늘날 도처에 있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장에서 ‘시위대’와 평화로운 ‘일반시민’이 공존하는 생경한 풍경을 보는 일은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광주나 향주에서의 고립은 분명 신군부와 연산군에 의해 외생적으로 봉쇄되고 왜곡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위대 너머의 일상을 설득하는 일은 외생적인 일만은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최정운. (2012). 『오월의 사회과학』.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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