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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조혈모세포 기증을 마친 겸, 몇가지 후기를 쓰기로 했다. 기증에 관한 몇가지 절차, 실질적인 경험과 통증, 그리고 기증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차례로 쓸 것이다. 기증절차는 지난달 실질적으로 끝이 났지만, 이제야 글을 마무리 하였다.



1. 몇가지 절차에 관해서


조혈모세포라고 함은 혈액을 생산해내는 모(母)세포라고 한다. 특히 뼈 안에 있다고 하고, 과거에는 이를 채취하기 위해서 골수로부터 직접 채취했기 때문에 조혈모세포기증이 골수이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즘은 실제로 골수로부터 직접 채취하지는 않는다. 골수로부터 채취하는 경우는 다급하게 이식할 필요가 있을 때라고 한다. 보통은 헌혈하듯이 팔에서 채취를 하는데, 드물게 말초혈관에서 채취가 어려운 경우에는 몸에 작은 관을 삽입한다고 한다. 내가 조혈모세포 기증서약을 하게 된 것도 이러한 설명 때문이었다. 물론 실제로 경험해보니 그렇게 간단하고 편한 경험은 결코 아니었다.


조혈모세포 기증서약을 하게 된 것은 2011년도였다. 당시 나는 복학 후 첫학기였는데, 학교에서 조혈모세포 기증서약을 받고 있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였다. 나는 전혀 서약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K모씨에게 붙잡혀서 얼떨결에 서약을 했었다. 서약을 하면 조혈모세포 등록을 위해서 피를 뽑아야 하는데, K모씨가 당시 피를 뽑으면서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고 등록을 강권했다. 특별한 계기도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나와 조혈모세포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휴대전화번호가 바뀐 터라 학교를 통해서 연락이 왔었다. 기증서약을 할 때 주민등록증에 작은 기증서약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이후 나는 지갑을 분실해서 주민등록증도 새로 발급받았던 터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어쨌거나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다고 하고, 나는 기증서약을 했던 터라, 다소 놀랍고 저어 되기는 했지만 연락을 했다. 그 이후로는 정해진 바대로 얼마전 기증을 하였다.


먼저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 가서 간단한 검사를 받게 된다. 협회까지 거리가 멀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원하는 지역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협회 간호사가 지역 보건소로 출장을 간다고 한다. 나는 협회에 직접 찾아갔다. 검사는 내 조혈모세포가 환자와 일치하는지 정밀한 검사를 하기 위함이다. 피를 뽑게 되는데, 그 결과는 수일 후에 나온다. 일치여부가 판별이 나면 환자측에서 기증받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설명 받은 바에 따르면, 기증을 위한 환자의 신체적 준비과정이라고 한다. 이 과정은 정해진 시간이 없고 상당히 오래 걸린다. 평균적으로 2~3개월 정도 무기한 기다리게 된다. 나는 비교적 빨라서 2개월 정도 소요됐다. 이 기간이 끝나면 입원일자를 조율하게 된다. 2박 3일인데, 주말을 낄 수가 없다. 일요일이나 토요일을 하루 낄 수가 있으나 병원일정과도 조율되어야 해서 쉽지 않다. 나는 결국 3일 내내 평일이어야 했다. 


입원일자가 정해지면 대략 입원 한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주로 혈액검사이다. 건강검진을 받고 그 후 검사결과를 토대로 담당의사의 진료가 있는데, 나는 검사결과가 문제가 없고 의사가 바쁘다고 진료는 생략했다.



2. 실질적인 통증에 관해서


입원일 3일 전부터 입원할 병원에서 조혈모배양주사(좀 더 정확한 명칭은 약간 다른 듯 하다)를 맞게 된다. 신장이나 몸무게 등에 따라 배양주사의 횟수가 달라지는 것 같기는 한데, 보통 한번에 2대를 맞게 된다. 일반적인 근육주사가 아니라 피하주사이기 때문에 약간 더 아프다.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는 속도가 빠르면 아프고, 느리면 사실 별로 아프지는 않다. 그래서 아프면 천천히 놓아 달라고 해야하는데, 처음 맞았을 때에는 아주 천천히 맞아서 거의 느낌도 안 났지만, 간호사가 바쁘면 천천히 놓아 달라고 해도 자꾸 빨리 놓아서 아프다.


하지만 실제 고통은 주사 맞을 때가 아니라, 맞고 난 다음이다. 증상이나 그 정도는 사람마다 상이하지만, 주사를 맞으면 뼈 안에서 조혈모가 생성되느라, 통증이 있다. 나는 그 통증이 심했는데, 팔·다리, 허리와 골반 등이 다 아프고, 근육통도 있고, 두통도 나고, 열도 나서 밤새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 아프면 협회 담당자에게 계속 알리게 되어 있는데, 알려 봤자, 아픈 게 정상이고 사실 아플수록 좋은 거라서 타이레놀 먹으라고만 한다. 입원해서도 이 주사를 맞는데, 나는 하루 더 맞아서 퇴원 전날까지 맞았다.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나는 증상은 퇴원하고도 계속 이어졌다. 대략 퇴원 후 이틀 뒤까지도 계속 식은 땀을 흘렸다. 물론 주사를 안 맞으면 바로 호전된다.


입원해서 실질적인 조혈모세포 채취는 두번째 날에 이루어진다. 그날 오전에 필요한 조혈모세포량이 채취되면 다음날 오전에 퇴원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채취량이 부족했고 다음날에도 채취가 이루어졌다. 조혈모세포배양주사도 꽤나 아팠는데, 채취도 쉽지는 않았다. 4~5시간 정도 잡는데 채취속도가 빠르면 3시간 정도로 단축된다. 채취하는 동안에는 양팔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멍하니 TV 같은 거나 봐야하는데, 나는 휴대전화에 예능프로를 잔뜩 받아놓고 그걸 계속 봤다. 영상이 끝나면 다른 거 틀어 달라고 해야한다. 한 손으로 간신히 지문을 인식해서 잠금을 풀어서 영상을 봤다.


처음 1~2시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시간이 길어지면 솔직히 팔이 너무 아프다. 바늘이 꽂힌 부위가 점점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양팔이 너무 아파서 계속 바늘을 확 뽑고서 난리 치는 상상을 했다. 아픈데 움직이면 채취기계가 멈춰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움직일수록 시간은 길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더 움직일 수가 없다. 나중에는 아파서 억지로 계속 예능프로를 봤다. 물론 하나도 집중은 안되었는데, 나중에는 어딘가 집중을 안하면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건강할수록 채취속도도 빠르고 채취된 혈액에서 조혈모세포의 수도 많다. 그러나 나는 안 그랬다. 안 건강했다. 첫날은 4시간을 채워도 목표량을 다 채우지 못했고, 채취된 조혈모세포의 수도 부족해서 다음날에도 4시간을 채워야 했다. 채취가 끝난 후에는 팔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지 팔에 알이 심하게 박혀 있었고, 지금도 그래서 팔이 아프다. 물론 성분헌혈과 유사하기 때문에 내가 느낀 통증이 유별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처음에는 별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으나, 시간이 길어질수록 통증이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참기 어려운 정도로 심했다.


채취는 한쪽에서 피를 뽑고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하고, 추출하고 남은 피는 다시 반대쪽 팔로 주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항응고제를 동시에 투약 받는다. 항응고제를 투약하면 그 증상으로 팔, 다리가 저리다. 그러나 나는 팔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저린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채취가 끝나면 몸에 혈소판 수치가 상당히 하락하는데, 이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몸에 멍이 든다. 나는 퇴원을 앞두고 보니 팔에 심한 멍이 들어 있었다. 특별한 충격이나 근육사용이 없었는데, 불과 한 2시간 동안 병실에서 빈둥거리다가 생긴 것이다. 멍이 거의 야구방망이로 구타를 심하게 당한 것 같을 정도로 심한 멍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통증은 없다.


여기까지가 통증에 관한 나의 경험이다.



3. 기증에 관해서


보통 조혈모세포기증을 한다고 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골수기증’이라는 악명 때문에 아주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오늘날 조혈모세포기증은 골수에서 직접 채취하는 것이 아니다. 성분헌혈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아프지 않고 아주 쾌적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손쉽지 않았다. 배양주사와 혈액채취, 크게 두가지 고비가 있는데 나는 두 과정 모두 상당한 고통을 수반했다.


둘째로 ‘사회에 기여한다’, ‘좋은 일한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가 삐뚤어진 탓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먼저, 사회에 기여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사실 아주 이상한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의료법상으로 나의 기증은 어떤 대가를 받을 수가 없다. 판매가 아니라 기증이어야하기 때문이다. 헌혈처럼 협회에서 교통비나 영화표 같이 소소한 혜택을 주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을 바라고 할 일은 분명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이익을 바라지 않고서 환자를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에 기여하는 일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면 다소 의구심이 든다. (정확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물론 협회는 내가 기증한 조혈모세포를 정당한 대가를 받고 판매하고, 환자는 병원에게 그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보통 헌혈이 이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입장에서는 조혈모세포가 일치되는 일이 드무므로(가족간에서도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금전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게 익명의 환자개인을 위한 일이지, 어떻게 사회를 위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완곡하게 말하자면, 이 일이 사회를 위한 일이 되려면 어떤 논리가 필요한지 궁금하다.


물론 이에 반문할 수도 있다. 병원도, 협회도 비영리기관이기는 하다. 또한 추상적인 ‘사회’ 내지는 ‘사회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주 이상한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시혜가 아니라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 탓에 우리는 흔히 기부에 반감을 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조에 후원금을 내는 것은 연대이고, 지나가는 예컨대 어떤 개인에게 기부하는 것은 ‘적선’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조혈모세포 기증의 문제도 이와 같은 이분법으로 구분하기에는 난감하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언급했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한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그렇게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나는 사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약간의 효용이라도 증가하는 이상,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4. 맺으며


기증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나의 동의를 받는다. 최종 기증의사부터, 추가기증 의사, 혈소판 기증 의사 등 여러가지가 더 있다. 사실 퇴원 이후 기증뿐만 아니라, 입원 당시 2차 채취도 추가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 나는 모두 동의하였으나 한가지는 동의하지 않았다. 사진촬영 및 인터뷰였다. 그냥 홍보용 소식지 같은데 싣는다고 하는데, 나는 일절 거절했다. 덕분에 이번 일은 더욱 더 개인적인 일이 된 것 같다. 퇴원해서 보니 소식지 하나를 받았다. 보아하니 기증자들끼리의 동아리도 운영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괴리감이 좀 느껴졌는데, 나는 아직 소위 ‘좋은 일’을 하고서 기분이 좋거나 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