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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잡담: Woody Allen, <Annie Hall>, 1977



한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은 <애니홀>에서 앨비 싱어(우디 앨런)과 애니홀(다이앤 키튼)이 테니스장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다. 테니스를 끝내고 애니홀은 앨비가 마음에 들었던지, 그 기색이 역력하다. 실 없는 소리를 하면서 시종일관 웃어 대고, 어떻게든 그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엘비도 비교적 태연해보이지만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애니홀은 차를 가져왔지만 엘비의 차를 얻어타려고 하고, 엘비는 운전을 하지 않아 택시를 타야하지만 그녀에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말한다.


이런 비슷한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도 본 것 같다. 어떤 영화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은데, 아마도 우디 앨런의 영화를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영화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차를 주차해놓은 곳까지만 같이 걸어달라고 하는데, 두 사람은 한참을 걸어도 차가 나오지 않는다. 남자는 차가 도대체 어디에 주차되어 있냐고 묻는데, 여자는 거의 다 왔다면서 사실 자기 집 앞에 주차되어 있다고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애니홀>은 엘비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이 난다. 두 독백에서 모두 그는 유머를 인용하는데, 이런 것이다.


-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어, 두 할머니가 캣스킬 마운틴 리조트에 있었지. 한명이 말해요, ‘여기 음식은 너무 끔찍해’,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헤요, ‘양도 너무 적어.’ 이것이 삶에 대해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야. 고독, 비참함, 고통, 불행뿐이지.


사실 우디 앨런에게 세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가 독백하듯이 삶이란 온통 고독과 비참함, 고통과 불행뿐이다. 그에게 세계란 사실 뉴욕과 같다. 즉, 늘 북적이고, 시끄럽고, 더러우며, 히스테릭한 공간이다. <맨하탄>에서는 아에 시작부터 뉴욕에 대한 글을 쓰며 시작한다. 이와 같은 그의 세계관은 그의 여러 영화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맨하탄>이나, <범죄와 비행> 등, 가장 극단적인 것은 현재까지 보기로는 <블루 재즈민>이 가장 우울하고 비참하게 현실을 묘사한다.


한편 엔딩에서 그가 인용하는 농담은 다음과 같다.


- 한 남자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말했어, ‘저희 형이 미쳤어요. 자기가 닭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말하길 ‘형을 데려오지 그래?’ 그러자 그는 얘기했지. ‘그러면 계란을 못 낳잖아요.’ 남녀관계도 그런 것 같아. 비이성적이고 광적이고 부조리해.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사랑을 할거야.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니까.


다시 테니스를 치던 엘비와 애니홀의 이야기를 들춰보자. 차가 있든 없든, 사랑하는 상대 앞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니홀이 위험천만한 운전도 사실 엘비와 함께 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비이성적이고, 광적이다. 그리고 아무리 혼자 사랑을 할 지라도 상대는 마음을 돌리지 않으며, 상대에게 그 동안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떻게 그녀의 삶을 바꾸었을 지라도,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보면, 사랑은 부조리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계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의 형은 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니홀>은 엘비, 우디 앨런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이 난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사실 그녀에 대해서 그가 회고하는 형식을 취한다. 잠시 독백이 아닌 것 같은 형식을 취할 때가 단 하나 존재하는데, 씁쓸하게도 그가 이미 마음이 바뀌어버린 애니홀에게 구애하는 장면이다. 자기서사로 이루어진 사랑이라는 판타지는 상대방과 대면하는 순간 씁쓸하고 고독한 현실로 복귀시킨다. 이런 연출은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블루 재즈민>에서도 유사한 것이 연출되는데, 훨씬 우울한 판본이다.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는 우디 앨런 영화답지 않게 비교적 수다스럽지 않은 장면들이 주로 연출되는데, 현실로 복귀하는 순간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는 상대 여성의 인터뷰와 함께 아주 수다스러운 모습이 잡힌다. 때문에 아주 선명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는 우디 앨런의 자기서사가 아주 우스꽝스러운 것임이 폭로되고, <블루 재즈민>에서는 아주 혐오스럽고 비참한 것임이 폭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디 앨런에게 이 판타지는 비판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예찬의 대상으로 보인다. 다수의 영화에서 그가 선택하는 낭만적인 연출들에서도 그렇고, <애니홀>에서는 계속 사랑을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나. <애니홀>에서 그가 사랑하는 뉴욕은 더럽고 비참하며 죽어가는 도시인데, 낭만적 판타지는 그런 도시를 살아가는 그가 선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는 허구이지만 동시에 실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영화에서 끊임없이 현실의 독자에게 말을 걸고, 영화와 영화 속 영화를 넘나드는 것처럼, 이 판타지는 어떤 저편과 현실을 매개하는 수단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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