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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후기: 전수일, <파리의 한국남자>, 2016



난생 처음 시사회에 당첨이 되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주연 배우와 감독도 볼 수 있었다. 사실 기대치 자체는 거의 제로였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우연히 당첨된 시사회였다. 영화 제목도 촌스러웠고, 영화 포스터를 보니 더더욱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포스터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포스터는 순전히 낚시다. 마치 우디 앨런 영화를 포스터로 억지로 자극적인 성인영화인 것처럼 홍보하듯이, 대단한 멜로영화인 듯이 포스터에 그려져 있었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다. 덕분에,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영화는 포스터에 묘사된 것처럼 멜로영화라기 보다는, 예술영화에 가깝다. 상업성은 거의 포기한 영화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졸음을 참기 힘들어서 잠깐 잠깐씩 잠들었다. 지루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스탠리 큐브릭의 역작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1분도 안졸 수 있다고 누가 말한다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원래 그런 영화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는 매우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부디 이 영화를 본다면, 지루한 거라는 걸 알고 보도록 하길 바란다. (사실 인터넷에서 영화 평점을 보니, 최악의 평점을 준 사람들이 많길래, 약간의 항변을 해보았다.)

덧붙여서 영화제목은 <파리의 한국남자>이지만, 당초 제목은 <연꽃버스>였다고 한다(시사회에서 감독이 말해준 내용이다). 그리고 연꽃버스라는 말은 성매매 여성을 도와주는 자선버스로, 영화를 보니 성병검사나 위생용품 등을 보조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길 수 있지만, 사실 대단한 반전이나 결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상호(조재현)는 신혼여행 중에 사라진, 아내 연화(팽지인)를 찾아 헤맨다. 이 영화는 (감독이 말하듯) 이것이 전부다. 복잡하고 심오한 그런 것이 아니다.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간혹 길거리 집시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몇번씩 등장할 뿐이다.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다. 대사가 종종 있지만, 긴 대화를 오고가지도 않는다. 영화 천지에 온통 공백으로 가득차 있다. (감독은 관객에게 상상하길 원한다고 했다. 영화는 우리에게 아주 노골적으로 상상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첫 장면은 상호가 누군가에게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누구와 대화하는지 나오지 않는다. 프레임은 상호가 대화하는 상대는 보여주지 않는 대신에, 상호의 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보여준다. 그 공간은 여성의 화장대가 놓여있는 빈 방이다. 다시 말해서, 상호는 여성의 빈공간을 등진 사내, 즉 아내를 찾는 사내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상호가 첫 장면에서 누구와 대화하고 있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창(미콴락)이다. 그녀는 파리의 ‘매춘부’로 지고지순하게 아내를 찾아 헤매는 상호에게 매력을 느껴서, 종종 자신의 집에 그를 불러 대화를 한다. 유난스러워 보이는 공주풍 화장대 역시, 그녀가 ‘매춘부’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서 이미 힌트는 등장한다. 상호의 뒤에 있는 빈 공간은, ‘매춘부’가 사라진 공간이다. 이것이 무엇을 서술하는지는 좀 더 뒤에 쓰겠다.

영화의 주된 인물은 이미 다 등장했다. 상호, 연화, 창이다. 그리고 영화는 상호가 연화를 찾아 헤매는 과정들로 구성된다. 연화는 이따금 회상 장면에 등장하고, 창은 마르세유로 떠나기 전(연화가 마르세유에 있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듣고 떠난다) 이따금 파리에서 그와 대화를 하던 장면에서나 볼 수 있다. 상호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연화의 사진을 보여주며 다닌다. 그런데 유독 ‘매춘부’들을 상대로 아내 연화를 찾아다닌다. 그 이유는 상호가 연화와 신혼여행을 다니던 회상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화는 상호를 ‘쌤’이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사제 관계에서 부부로 발전한 것 같다. 연화와 상호와의 여러 섹스신들도 간접적인 힌트를 준다. 연화는 유독 상호와 여행을 즐기면서, ‘매춘부’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 상호의 생각들을 물어온다. 그러나 상호의 대답들은 대개 싸늘하다. ‘저건 더러운 거야’, ‘너가 왜 저런데를 가’ 등. 

창과 상호와의 대화에서도 모종의 힌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창은 어릴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온 ‘매춘부’이다. 하지만 프랑스인 양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팔고 있다. 하지만 아내를 찾아 헤매는 상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종종 그를 집에 초대하여 대화를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상호는 돈을 훔쳐 그녀에게 주고 섹스를 요구한다. 이에 실망한 창은 상호를 만류하는데, ‘당신은 아내를 찾아야 하잖아’라는 물음에 상호는 ‘내 인생이니 결정은 내가 알아서 해. 너는 상관하지’ 말라고 하며, 그녀의 목을 조르다가 놓아주고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난다. 여기서 상호의 정서는 단순히 오랫동안 섹스를 하지 못한 남자의 것으로 환원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도 힌트가 있다.

마지막으로 상호는 두개의 반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연화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것으로 목걸이에 걸려있다. 연화는 상호와 카페 앞 테라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녀가 떠나기 전 상호의 반지를 목걸이에 걸어주고, 어느 순간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반지는 두고 사라진다. 상호는 그녀를 찾던 어느날 어느 카페 앞 테라스에서 그녀의 반지를 두고 떠난다. 상호는 창에게 그녀가 납치됐다고 설명하지만 사실 연화는 스스로 떠난 것이다. 반지를 가지런히 두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점을 상호도 잘 알고 있었다. 연화가 있다던 마르세유로 상호는 찾아갔지만, 끝내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보지 못하고 쳐다만 본다. 대신에 한국인 ‘매춘부’가 있다는 호객꾼의 말을 듣고 그곳에서 반지를 화대로 주고 술에 취해 잠든다. 잠결에 그는 한국인 ‘매춘부’와 섹스를 했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의 목에 다시 목걸이와 반지가 고스란히 걸려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파리의 어느 다리 밑으로 가서 잠을 잔다. 여기까지다.

그렇다. 사실 연화는 ‘매춘부’였었고, 상호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 그리고 상호의 말을 들은 연화는 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나온 ‘매춘부’의 빈 화장대는 상호가 찾는 그녀가 ‘매춘부’였음을 이미 알려주고 있었다. 단지 여성의 빈자리가 아니라, ‘매춘부’의 빈자리였기 떄문이다. 그리고 상호는 언제부터 깨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 (회상장면과 비교해서 볼 때, 상호는 최소 몇개월에서 몇년 동안을 찾아 헤맨 듯한 몰골을 하고 있다.) 연화가 ‘매춘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는 강한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매춘부’들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 헤맸었던 것이다. 창을 강간하려고 했을 때에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가 ‘매춘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창에게 돈을 주고 섹스를 해도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 섹스신에서 여성은 정확히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연화였다(앞서 말했듯이 영화의 원제는 사실 연꽃버스였고, 이는 다름아닌 연화를 가리킨다). 상호에게 반지가 되돌아온 것에 대해서, 조금 상상을 하자면, 연화는 남편에게는 화대를 받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호는 마지막 파리 어느 다리 밑에서 누워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지적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상호가 이리 저리 연화를 찾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은 만난다, 짤게나마. 그리고 이런 장면도 있다. 파리의 지하철 어느 통로에서 집시가 연주를 하는 장면 말이다. 이 장면에서 상호는 술에 취했는지 정신도 혼미해서 시선도 흔들리고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게 터덜터덜 화면이 진행된다. 그런데 바로 반대쪽 시선, 연주하는 집시를 향하는 시선이 아니라, 연주를 구경하는 상호를 향한 시선에서 화면은 매우 깔끔하고 흔들림 없이, 때문에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입장에 따라 세상은 그렇게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신혼여행 중이었던 상호와 연화처럼, 그리고 극장에서 보았던 ‘남창’을 보며 상호가 ‘더럽다’고 했지만, 얼마 후 자신도 돈을 구걸하기 위해 ‘남창’을 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말하는 방식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