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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경험분석에 대한 세 가지 메모



1. 

나는 경험분석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가끔 궁금한데, 꽤 오래된 생각이다. 몇년 정도 된 것 같다. 내가 이론에 대한 것을 대단히 좋아하고, 심지어 그쪽에 편중되어 있음에도 그렇다. 나는 누군가 어떠한 주장을 하려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경험적인 근거를 보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모든 주장에 있어서 경험적인 근거가 있어야지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더불어 나는 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사실은 엄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어떠한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실 때문에, 우리의 어떤 이론과 주장과 가설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경험분석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선험적인 이론을 검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우리는 경험분석을 통해서 사실에 대하여 반박할 가능성을 얻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2. 

모 기관에서 자본론 세미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더 낮은 단계의 수준인 현상을 근거로, 너 높은 단계의 이론과 현상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낮은 추상수준에서 임금은 노동의 대가일지라도, 더 높은 추상수준에서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이 되고, 착취가 되고 가격이 아니라 가치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낮은 추상수준에서의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든, 높은 추상수준에서의 본질이 존재하고, 그것이 일종의 중력법칙처럼 존재하고 결국에는 가치법칙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자본론에 대해서, 또는 경제학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주장을 경험적으로 분석해내지 못하면, 그건 그냥 가설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 “더 낮은 단계의 수준인 현상을 근거로, 너 높은 단계의 이론과 현상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내가 볼 때, 입증해야하는 주장을 근거로 삼는 순환논리, 또는 대상과 방법을 구분하지 못하는 비과학일 수밖에 없다. – 때문에 그러한 상태에서 주류경제학을 그저 ‘이데올로기’라고 선언하는 것만큼 코미디인 것은 없다.

물론 과학이 아니라고 해서, 철학이나 이데올로기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3.

한 그래프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일상적인 그래프였는데, 나는 그 그래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 그래프의 추세는 보정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이다. 좀 더 생각해보니, 대체효과와 소득효과를 구분해볼 필요도 있어 보였고, 연도별 데이터였지만, 좀 더 빈도수가 높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첫째는 내가 역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다 됐구나 싶은 것, 둘째로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부터 연유한 것들이 많다는 것.

나는 최근의 다양한 이슈들을 접할 때마다 종종 불편함을 느꼈었다. 저런 주장은 조금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 혹은 너무 어떤 부분을 과소평가하거나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들은 대개 ‘진정한’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와 같은 결론을 내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최적화’, ‘불편의성’ 같은 것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해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