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트

책에 관한 일기



1. 

연구실이 생긴 이후로 내 방 책장 사진 찍어 본것도 몇년 된 것 같아서 찍어봤다. 예전이랑 지금이랑 비교했을 때, 책 위치는 좀 달라졌고, 물론 책도 많이 늘었다. 이제 책은 더 꽂아둘 수 없어서 여기 저기 쌓여있고 아빠 서재와 연구실로 분산됐다.

읽지도 않는 책을 그저 전시만 하는 것 같아서 책장은 이제 부채 같은 게 되어버렸다. 어릴 때 형이 장롱에 매달려 놀다가 장롱이 넘어진 적이 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책장이 어느날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책은 자꾸만 느는데, 내 공부는 좀처럼 늘지 않고, 부채가 자꾸 쌓이는 것이다.

2. 

사실 요즘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몇권 읽을 뿐이다.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요새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요새는 책을 읽는 것이 좀처럼 즐겁지가 않다. 의무감이 크게 들지도 않고, 딱히 즐겁지도 않으니, 책이 손에 잡힐리가 없다.

올 초에 작년 한해 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서 일종의 회고록 같은 것을 쓴 일이 있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작년 한해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콜린 고든 편저의 『푸코 효과』였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이 책을 기점으로 푸코와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밖에 두 권의 책을 더 꼽았었는데, 그 중에 한 권이 수잔 드 브뤼노프의 『Marx on Money』였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푸코와 멀어지게 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3. 

고등학생 때는 소설책만을 읽었다. 당시에는 비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나와 ‘썸’을 타던 한 아이가 경제에 대한 실용서를 읽는 것을 보고, 까무라치게 놀라서 그걸 대체 왜 읽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비소설도 아니고 비문학, 게다가 실용서였으니 말이다. 지금 기억하기로 재태크에 대한 책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몇권의 비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참 재미있었다. 당시에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였다. 1, 2권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두 권 다 내가 아주 즐겁게 읽었던 책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비문학을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되고서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해서였다.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은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모은 『빈센트 반고흐의 영혼의 편지』라는 책이다. 지금도 이책은 아주 잘 팔리고 있는 것 같아서, 한 권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장 한장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탐독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책은 문학책이기는 한데, 그 이후로 『반 고흐 효과』라거나 하는 비문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문학책만을 읽던 나에게 그런것들은 꽤 지루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4. 

요즘 내가 읽는 책은 몇가지로 구분된다. 교과서, 세미나에서 읽는 책, 그냥 재밌어 보여서 읽는 책. 그리고 문제는 세번째에 있다. 재밌어 보여서 읽는다고 하지만, 영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전공과 관련된 책 말고, 다른 책을 좀 읽어볼까 했다. 인문학이나 사회학. 그런데 그래도 영 재미가 없어서, 조금은 읽기 쉬운 인문학 학술서들을 골랐는데, 여전히 별로다. 문학책을 읽기에는 이제 나는 문학책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정말 재미있게 문학책을 읽었던 가장 최근 기억은,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이다. 딱딱한 교과서나 전공서를 읽을 때는 경험할 수 없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단편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그 이후 1-2년 후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을 샀지만, 초반 부분을 조금 읽다가 말았다.

원래 시집을 이따금 읽었는데, 시집을 펴본지도 아주 오래됐다. 내 기록을 뒤져보니, 가장 최근에 시집을 완독한 것은 2014년 10월, 맹문재의 『책이 무거운 이유』이다. 1년 하고 몇개월 전이다. 더구나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때는 수년 전이다. 그 시절 읽었던 책들 중에 상당수를 나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시집으로 꼽는다. 권혁웅의 『황금나무 아래서』, 조말선 『둥근 발작』, 김수영, 『거대한 뿌리』, 김선우, 『도화 아래 잠들다』 등.

5. 

요새는 정말 책읽는 것이 재미가 없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책은 공부이거나 부채일 뿐이지, 더 이상 유희가 아니다. 한 동안 책은 덮고 해야할 일을 해내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