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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후기: 사라 폴리, <우리도 사랑일까>, 2011



다음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제목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국문제목은 아주 구린데, 영어원제는 <Take This Waltz>이다. 국문제목이 영화의 내용과 관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소 스토리를 너무 미리 짐작하게 하는 면도 있고, 내용을 다소 왜곡시키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High Fidelity>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가 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국문제목이 너무 구려서 보지 않으려고 했던 영화였지만, 원제가 전혀 다른 것을 알고서 보기로 했고, 보기를 잘했다.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마고(미셸 윌리엄스 역)는 결혼 5년차의 프리렌서 작가인데, 낯선 남자를 알게 되고 그에게 자꾸 끌리게 된다. 미리부터 스포일러를 하자면 결국 그녀는 남편 루(세스 로겐 역)를 버리고 대니얼(루크 커비 역)에게 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정말 구체적이고 섬세한 게 상당히 볼만하다.


영화는 마고가 요리를 하고 지쳐 쉬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같은 장면으로 끝나는 수미일관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데, 차이점은 첫 장면에서 마고는 관객에게 은근슬쩍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고가 홀로 놀이기구를 타는 환상적인 장면이 덧붙여져 있다는 점이다. 사실 화면을 멈추고 다시 보면 두 장면이 아주 약간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남자에게 백허그 하는 장면에서 햇빛의 위치가 좀 다르다. 전자에서는 역광이 더 심해서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운 반면에, 후자에서는 약간 더 남자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있는데, 바로 대니얼이다. 첫장면에서는 대니얼이 아직 등장하기 전이라 당연히 남편 루라고 여기게 만드는데, 화면을 멈추고 보면, 첫장면에서도 루가 아니라 대니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수미일관하게 배치된 장면을 양끝에 두고서 그 가운데, 두 남자를 사이의 여성, 마고의 갈등과 긴장을 보여준다. 물론 그녀의 이 과정은 사실 종국에는 일종의 성장기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중간’이 그녀에게 아주 불안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데, 이는 마고와 대니얼이 비행기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녀 스스로 말해준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그 중간시간’이 자기는 아주 불안하다고. 그리고 그 불안을 애써 ‘두려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 두렵다’라고 이중으로 말하는 것은 물론 욕망의 본질적인 부분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겠지만, 라캉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두 남자를 곁에 둔 마고의 긴장과 갈등은 영화에서 특히 그녀의 세밀한 감정과 욕망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내 생각에 영화에서 벽이나 창문(또는 그러한 장벽의 부재) 따위는 감정선을 연출하는 주요한 장치로 보이는데, 후술하겠지만 영화에서 가장 급진적인 장벽허물기는 첫 장면에서 마고가 관객에게 눈을 맞춘 것이라는 점은 명료하다.


당연하게도 마고와 루의 행복한 생활은 그와 그녀의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집은 나가지 않으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 쌓은 공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집안에서는 아무런 벽도 없는 공간으로 두 사람 간에는 어떠한 심리적인 장벽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물론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두 사람 사이는 멀어진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물리적인 벽도 존재하지 않지만, 만질 수도 건들일 수도 없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와 루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서 화해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냉랭한 두 사람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서로를 마주보다가 이내 화해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둘은 다시 화해한 것처럼, 이제 마치 같은 공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맞춤은 결국 허공에 하는 것이고, 밖에서는 들리지 않는 음악소리는 두 사람은 결단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집스럽게 드러낸다.


한편 대니얼과 술을 마시는 장면은 두 사람 간에는 어떤 물리적 장벽도 존재하지 않지만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대니얼의 목소리를 통해서 마고가 꿈꾸는 욕망은 그대로 재현되는데, 마고의 표정은 흥분에 가득 차지만 결코 두 사람은 맞닿을 수 없다. 물론 마고의 욕망이 대니얼의 ‘말’을 통해서 재현된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마치, 그녀가 (라캉이 말하는 것과 같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밖에 마고와 대니얼이 함께 수영하는 장면이나, 마고가 대니얼의 집에 들어가는 장면 등 마고의 갈등하는 욕망은 그 밖에도 많다. 수영하는 장면에서 마고는 대니얼과 피부가 닿자 황급히 자리를 뜨는데, 이는 금기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닿기 직전의 ‘딱 거기까지’를 보여주는 것도 같다.


사실 그녀의 욕망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정확하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물론 그녀의 욕망은 단순히 성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녀는 루의 가족 간에도 멋지고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싶었고, 다른 일들도 모두 잘해내고 싶다. 루의 누나가 술에 취해서야 그녀에게 말하듯이, ‘인생에서 있기 마련인 빈틈을 모두 메우고 싶었’던 것이다. 루와 마고의 섹스신이 환상적으로, 다시 말해서 허구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을 보면 처음부터 충족가능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녀와 두 남자 간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그녀의 욕망에 대해서 말한다. 사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녀가 한 관광지에서 퍼포먼스로 사람을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비행기에서 그녀가 읽던 책도 그런 내용이다. 다시 장벽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벽은 그녀의 감정들과 욕망들을 드러내는 은유이자 영화적 장치로 보인다. 금기와 같은 장벽은 넘어서는 것은 때때로 매우 살 떨리는 일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에서 가장 급진적인 장벽 가로지르기가 존재한다. 바로 영화의 오프닝에서 마고가 관객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은 이 영화를 순식간에 그녀의 성장기로 바꿔놓는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 뭐 그런 게 생각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고르라면 아마도 대니얼과 마고가 술을 마시며(정확히는 술은 한 모금도 안 마셨지만) 대니얼의 욕망을 듣는 장면일 것이다. 그녀는 마치 매우 흥분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영화는 이를 롱테이크로 클로즈업한다. 마치 자위하는 여성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치 자위를 해봐야 여성도 스스로의 욕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