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트

수면제 복용일지, 첫번째



이 글은 수면제를 복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나의 수면제 복용일지와 불면증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불면증에 대해서도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내 불면증은 이미 수년전부터 있었는데, 길게 잡으면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있던 것이다. 정말 본격적인 것은 2011년도 즈음이었다. 말하자면 이미 만성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가끔 약국에서 파는 수면유도제를 먹은 적이 있으나 다음날에도 하루 종일 몽롱해서 복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도 수면제를 먹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익히 수면제에 대한 각종 부작용을 들어왔었기에 수면제를 내가 언제 얼마나 먹고 그 경과는 어떤지 기록하기로 했다. 이 글은 내가 근래에 먹은 수면제와 그 경과를 서술한 것이다. 수면제를 먹은 지는 몇 주되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면제 복용일지를 기록하고 가끔씩 블로그에도 공유할 생각이다. 불면증에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 더 경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 글의 말미에 특이사항이 있을 것이다. 바로 내성이다.


수면제의 처방


우선 수면제처방은 반드시 정신과에서 처방 받을 필요가 없다. 내과나 정형외과, 심지어 피부과에서도 처방 받을 수 있다. 일반의약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면장애는 정신과나 수면진단전문병원에서 면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다. 나는 평소 신경성 위장염으로 자주 찾았던 동네 내과에서 처방 받았다. 피부과에서도 처방 받은 적이 있는데, 아주 소극적으로 딱 한 알만 처방해주며, 자신의 처방에 대해서 대단히 조심스러워 하였다 – 이때 나는 할시온 한 알을 처방 받았다.


처음부터 스틸녹스를 먹은 것은 아니었고, 병원에서 처음부터 스틸녹스를 처방해준 것도 아니었다. 처음 처방 받은 것은 데파스(에티졸람, 1mg/ea)이었고, 한 알씩 먹었으나 만족스러운 효과를 느끼지 못해서 다음으로 처방 받은 것은 할시온(트리아졸람, 0.25mg/ea)이었다. 할시온은 정도에 따라서 반알로 나누어 복용하거나 한 알을 복용하라고 하였다. 효과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두 약 모두 복용 후 잠들기까지 한참 소요되었다. 1-2시간씩 뒤척이는 것은 기본이었다. 할시온의 경우 복용하고 다음날 아침 악몽을 꾸거나 악몽을 꾼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이 증상이 한번도 빼놓지 않고 매번 있었는데, 알아본 결과 약효 때문으로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 참고로 앞으로 서술할 스틸녹스뿐만 아니라 이들 약도 내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처방 받은 것이 악명높은 스틸녹스(졸피뎀, 10mg/ea)이었다. 약품명 스틸녹스, 성분명 졸피뎀인데 구체적으로는 ‘Zolpidem Tartrate’이라고 적혀있었다. 여하간 스틸녹스, 또는 성분명으로 졸피뎀이라고 불리는 약이다. 의사는 이 약을 다른 약을 처방할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처방했다. 특히 내가 약을 매일 복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처방해주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 사실 나의 대답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다. 처음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기로 결심한 것은 정말 잠이 안 올 때, 한번씩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실 상 나는 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거의 매일 먹었고, 약을 다시 처방 받을 때까지 수일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의존성은 단순히 나의 의지박약 때문인지 약물의 습관성·의존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틸녹스 또는 졸피뎀


졸피뎀에 대한 악명은 여기서 하나하나 짚을 수는 없다. 궁금하다면 이 약을 먹기 전에 구글링을 하기를 권한다. 이 약에 대한 악명은 아주 깊다. 나는 단지 기억에 의존해서 몇가지 짧게 지적할 생각이다. 장기복용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환각, 환청이다. 특히 근래에 나타났던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이 이 약 때문이라는 의혹이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이 문제가 다루어진 바가 있다. 환각, 환청, 우울증과 자살충동 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직접 보진 않았고 일부를 캡처형태로 보았는데 소름끼치는 내용이 많다. – 이 연예인들은 모두 졸피뎀 복용자였고, 목을 메고 자살하였는데, 섬뜩한 것이 있다. 이들 중 단 한명만을 제외하고 모두 도저히 목을 매고 죽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위치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하였다는 점이다. 즉 갑작스런 극심한 자살충동으로 아무데나 목을 대고서 억지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밖에 기억장애를 겪는다는 의혹이 있다. 졸피뎀 복용자들이 (자살충동을 느낀 사람들도 동일한 증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이를 당사자가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다. 옷을 벗고 다닌다거나, 머리카락을 자른다거나, 심지어는 밖에 나가서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온다거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했는데도 기억을 못한다는 사례들도 있다. 사람들은 이것이 복용자가 평소에는 참고서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이러한 환각상태에서 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약효가 남아있는데 도중에 잠에서 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장기복용 시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라는 말이 많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복용 이틀만에 이러하 증상을 겪은 사례가 등장한다. 구글링해보시길.


나의 졸피뎀 복용


나는 이 약을 하루에 한 알씩, 총 6일치를 처방 받았다. 약효는 아주 즉각적이지는 않았다. 웹 상에서는 5-10분 정도면 졸음이 온다고 나오지만 나는 10-20분 정도 소요되었다. 첫 복용 후 늦잠을 많이 잤는데, 약효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반 알씩 자기 직전에 먹고 있다. 우선 할시온처럼 기상 시에 불쾌감이나 악몽은 전혀 없다. 오히려 푹 잔 것 같은 느낌이다. 한번은 새벽에 잠이 안와서 졸피뎀을 먹고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오랫동안 푹 잔 것 같은 개운함을 느껴서 약효에 굉장히 만족한 적도 한번 있었다.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부작용도 나에게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특이점은 어제 있었다. 늘 반알을 먹었고 그러면 10분에서 20분, 길어야 25분정도면 잠을 자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어제는 그렇지 않았다. 1-2시간 가량 잠에 들지 못해서, 새벽 5시가 넘어서야 나머지 반알을 또 먹었고, 그제서야 잠에 들었다. 이것이 그날의 특이한 경험인지, 아니면 벌써 내성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졸피뎀을 먹은 첫날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반알씩 먹어서, 복용 6일째 되는 날의 일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내성이 생긴 것 같다.


더불어 다른 약에 비해서 확실히 심리적으로 이 약에 의존하게 된다.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분에 요즘에는 밤에 잠에 대한 고민은 사라졌다. 나는 늘 지금 자야 할까, 언제 누울까, 같은 것을 고민해왔는데, 이제는 몇 시에 눕던 간에 약을 먹으면 되기 때문에 고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특히 내성이 발견된 지금은 약을 먹을지 말지를 가지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덧붙임: 수면제에 딸린 잡념


내가 수면제를 먹기로 한 것은 올 여름 정모씨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이었는데, 매일 졸피뎀을 먹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농담으로 ‘현대인답다’고 했는데, 불면증과 수면제는 진실로 현대인의 표상이다. 현대 자본주의 도시라는 것은 도저히 쉬지 않는 불야성의 도시이고, 우리가 아는 동시대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관리하고 화폐를 관리하고, 위험을 관리하고, 노동을 관리하고, 질병 역시 치료가 아니라 관리하는 사회가 아닌가. 어쩌면 무엇인가를 치료나 치유를 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하며 변혁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정답을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것은 질식되어 버렸다.


10여년 전 어린시절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밤이었다. 이불 위에 누워서 낡은 베개 냄새를 맡고 포근함을 만끽하는 것이 나는 너무 좋았다. 때문에 가장 싫은 시간은 아침이었다. 시계가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기에도 그렇게 적었다. 그런데 불면증이 점점 심각해지면서부터 밤이 고역이었다. 심리적으로 삶에 대한 부담이 크니 잠이 오지 않고, 무엇인가 해야할 것만 같고, 그러니 빨리 아침이 와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잘 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 생각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말하자면 하루와 하루 사이에 단절이 적절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렇게 생각을 하면 레비나스의 말이 정말로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레비나스는 나의 불면과 함께, 우연히 접하게 된 학자로 나는 그를 한동안 꽤나 좋아했었다. 그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정말로 다른 로고스주의의 사람들과 달리 잠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불면은 불면의 상태가 끝나지 않으리라는 의식, 즉 우리를 붙잡고 있는 ‘깨어 있음’의 상태를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깨어 지키고 있는 상태. 여기에 묶여 있는 순간, 시작점과 종착점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과거에 용접된 현재는 모두 과거의 유산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새롭게 하지 못한다. 지속하는 것은 언제나 동일한 현재이거나 동일한 과거이다. 기억. 이것은 이미 과거에 대해 하나의 해방일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은 어디서도 시작하지 않는다. 멀어지는 것도 없고 흐릿해지는 것도 없다. 밖에서 들리는 소음만이 내가 잠들지 않고 있음을 알려 준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상황 속에, 앞에서 얘기한 비인칭적 존재, 즉 있다(il y a)고 할 수 있는 것과 흡사한 상황 속에,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불사성(不死性) 속에, 새로운 시작을 끌어들이는 것은 밖에서 온 소음뿐이다.


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깨어 있음은 있음(il y a)의 전형적인 성격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화(無化)를 통해 자신을 주장하는 존재의 모습을 보여 준다. 깨어 있음, 이것은 무의식의 도피처가 없는 상태요, 개인의 내밀한 영역인 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존재는 이미 그 자체가 평화라고 할 수 있는 자기에게 있는 존재(en-soi)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soi)의 부재이며 자기 없는(sans-soi) 상황이다.···” - 임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강영안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1996. pp.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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