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트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 간 구분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노트

최근에 잉여가치율에 관련한 국내 논문 몇 개를 훑어보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떠한 논문을 보고서,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어 관련한 다른 논문을 몇 개 더 대충 훑어 본 것이다. 이 논문이 무엇인지, 저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괜히 민망하니 특정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할 때, 대상을 명시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 수 있으므로 특정 하지는 않을 것이다 - 사실 나는 필요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을 꺼린다. 이 글은 볼 사람만 보면 된다.


다시 돌아가서, 대략 이 논문은 이런 내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잉여가치율을 가치단위로 계산하는데에는 두가지 표준적 모형이 이용된다. (물론 가격단위로 계산하는 모형도 존재한다.) 1) 국민소득계정을 이용, 2) 산업연관표를 이용하여 가치방정식(역행렬 방정식) 모형. 여기서는 1번이 지니는 한계와 그 보완을 다룬다. 기존 MELT 노동시간 모형은 두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기 귀찮으므로 핵심적인 부분을 논문에서 그대로 인용하기로 하자.


"결과적으로 MELT 모형의 문제는 다음에서 기인한다. 첫째, MELT 모형에서는 마르크스 가치론의 범주인 가변자본과 주류경제통계의 범주인 피용자보 수(중 생산적 노동자의 임금)가 직접 대응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실제 로는 생산적 노동자의 임금(산업연관표 상의 피용자보수)으로 구매되는 소비 중 상업 마진이 제외된 부분만을 가변자본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MELT 모형에서는 마르크스 가치론의 범주인 가치생산물(=가변자본+ 잉여가치)과 주류경제통계의 화폐적 부가가치(=피용자보수+영업잉여)가 대응 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 가치론에 근거하면 이외에도 비생산적 산 업으로부터 나온 중간투입물까지도 모두 가치생산물의 일부로 집계해야 한다."


그래프를 직접 보면 이렇게 나온다.



 

우선 레벨값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00~150%를 왔다갔다 하던 추세가 200~300%를 오고 가고 있다. 대략 추세가 비스무리한데, 약간 달라졌다고 하면 약간 추세가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선 레벨이 달라지는 것은 잉여가치율의 분자, 분모에 들어가는 내용이 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추세를 보면, 약간 달라진 듯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2000년 이후에 상승하는 추세를 발견되는 것이 흥미를 끌기도 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렇다. 이 논문의 내용은 정량적으로 분석할 때에 있어서 어떤 작은 편의(bias)라도 정정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생산적/비생산적 등과 같은 큰 가정에 근거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출된 결과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가정에 근거한 것이 아닌지 회의가 든다. 다시 말해서 이 결과는 내가 보기에 아주 임의적이다. 따라서 그 도출된 결론을 신뢰할 수 없다.


때문에 다른 논문들도 대략 훑어보았는데,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국내 몇몇 저자들의 고유한 어떤 것이 아니라, 사실 Shaikh도 그러한 작업을 하는 듯 하다. 이는 포괄적으로 국민회계나 대차대조표와 같은 통계청의 자료를 마르크스적 의미에서 적절한지에 대한 검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서 지적한 것들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작업은 크게 두가지 문제(혹은 비용)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앞서 말했듯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에 비해서 지나치게 강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명료하게 ‘오캄의 면도날’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정이 지나치게 크고 임의적이다. 물론 이들은 이 작업이 마르크스적 의미에 더 정확하게 접근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마르크스적 의미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작업(이를테면 잉여가치율, 이윤율 등)을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방법의 자의성을 없애거나 극소화하면서 우리의 작업이 마르크스가 정의한 바로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다고 고백하는 방법이다. 더 적합한 방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렇게 작업을 해야지 억지로 짜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피케티를 굳이 언급해보자(그냥 문득 생각난 사례이다). 피케티의 방법을 한국 데이터를 가지고 직접 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총자산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비금융자산에 대한 측정이 어려움이 있는데, 바로 여러 상이한 형태의 자산이 화폐로 올바르게 측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비금융자산에 대한 측정이 통계청에서 제시된 것이 2014년이다. 불과 2년전까지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때 비금융자산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추정하여 제시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좀 덜 적절할 것이지만, 이때도 최대한 임의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의 총고정자본 추계에 대한 과거치 역시 적절한 데이터가 제시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 아니다. 총자본형성에 대한 추계를 한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계산해오던 것이 아니라, 감가상각비를 통해 과거치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물리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적절한 데이터를 구할 수 없을 수 있고, 데이터가 있더라도 적절한 이론적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계가 있고, 그 한계 하에서 임의성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정의한 그 정의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거시경제학적으로 의미를 가지고(이는 특히 다른 변수간의 질적, 양적 관계를 밝히는 작업에 해당한다) 충분히 말이 되면(make sense), 그것은 매우 값진 일인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작업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어떤 의미로 이는 앞선 내용의 연장이다. 이와 같은 작업은 다른 연구와의 비교가능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물론 비교가능성을 훼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일종의 비용이다(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한 ‘임의성’ 역시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비용이다). 사실 그래서 우리는 이 잉여가치율과 저 잉여가치율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잉여가치율을 가지고 이것과 다른 제3의 변수 간의 질적, 양적 관계를 밝혀야 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비교가능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어떤 고유한 추세를 발견한다면, 그것의 함의가 훨씬 더 크고 중대하게 존재해야 한다.


내 생각에 앞서 지적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구분해서 거시변수의 추세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임의적이다. 특히 이때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을 구분해서 더하고 빼는 일이 단순히 산업연관표에서 정해진 산업구분을 근거로 삼는 것은 대단히 문제적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사실 특정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은 어떤 경우는 생산이고 또 어떤 경우는 비생산일 수 있지 않나.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임의성을 없애는 방법은 첫번째로, 거시집계변수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 구분을 폐기하고 마르크스적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마르크스와는 다르지만 거시적 의미를 우리가 얻을 수 있으면 된다. 이는 엄밀하게 말해서 ‘마르크스와 같고 다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적이기 위해서 임의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고, 우리는 여전히 마르크스적 의미에 ‘근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근사적 관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본론>을 근거로 유통부문은 생산노동이니 비생산노동이니, 금융부문은 상업이윤이니 아니니, 하는 논쟁은 불필요하다.


둘째로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 구분을 임의적이지 않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새로운 방법을 ‘학술적인 문헌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일단 없거나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서 일반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적절한 방법을 그래서 만들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특정한 확률 이론을 기초로 생산적인지, 비생산적인지에 대한 ‘기각역’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테면 ‘95% 신뢰수준에서’ 생산노동임을 기각할지 안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생산적인지 아닌지를 기초로 특정한 지수를 만들어 각각의 산업에 가중(weighted)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를 토대로 우리는 제조업에는 0.8을 곱하고, 어떤 서비스업에는 0.2를 곱하는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함께 세미나를 하던 모 인물은 그러한 지수를 혼자 만든 적이 있다. 그게 적절한지 안 한지, 물론 나는 판단할 능력 자체가 없었지만, 충분히 이와 같은, 혹은 약점을 개선한 새로운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을 막상 사용했을 때, 우리는 <자본론>과는 상이한 어떤 결과에 마주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세계는 우리가 읽어온 책과는 상이할 수도 있고, 우리가 발전된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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