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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드라마 <굿와이프> 후기



물론 원작인 미국 버전은 전혀 보지 않았다. 그저 이를 리메이크했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확실히 긴 원작을 짧게 축약해서 그런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단지 너무 짧게만 등장하고 전개가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꽤 빠르다는 인상이다.


내가 원작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핵심이 ‘성적 갈등’에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보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이러한 성적 갈등이 드러난다. 김혜경(전도연)이라고 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주변 남성들, 이를 테면 이태준(유지태), 서중원(윤계상)은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물론 최상일(김태우), 조국현(고준)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남성들이다. 심지어 김혜경의 두 자녀에서도 성적 구분은 뚜렷하다. 딸인 이서연(박시은)은 엄마에 공감하는 한편, 이지훈(성유빈)은 아빠와 동질감을 갖는다. 물론 이후 실망하고 말지만. 특히 현관문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때에는 동생에게 깜빡한 척하며 속이고, 이를 아버지인 이태준에게만 알린다.


한편 여성들은 일종의 공감형 인물들이다. 아니 여성들과 모종의 유대를 갖는 사람들이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김단(나나)이다. 그녀는 항시 김혜경을 도와 사건을 처리한다. 물론 그것이 그녀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김혜경과 처음부터 어떤 유대를 갖는다. 특히 김혜경이 드라마 초기에 맡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남편 때문에 유명인사가 된 김혜경에게 어떤 유대감을 갖는다. 물론 이는 그녀가 공감을 잘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김혜경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건을 부탁하면서도 종국에는 그녀와 어떤 공감을 이룬다. 그밖에도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편과 성상납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 엠버(레이 양)이다. 그녀는 돈을 뜯어내기 위해 김혜경에게 접근하지만 이태준의 협박을 받고 해외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협박 가운데서도 필사적으로 김혜경에게 다시 접근해서 이태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떠난다.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종의 성적 유대는 표면상으로 갈등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으로 전형적인 갈등 구도를 흐리는 두 인물이 존재한다. 하나는 단역이지만 너무 명백하게 위반되는 사례이다. 바로 김혜경의 시어머니 오정임(박정수)이다. 한국 드라마답게 시어머니는 아들 바라기이다. 하지만 게이인 김혜경의 동생 김새벽(윤현민)도 물론 게이이긴 하지만 남성임에도 김혜경과 유대를 갖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가장 명백한 위반사례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서명희(김서형)이다. 그녀는 여성이지만 로펌을 이끄는 대표로서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김혜경에게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의 동생인 서중원과 유대를 갖는다는 점에서 위반 사례이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성적 대립은 분명하지 않다. 이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다. 첫째로 김혜경은 로펌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고객에게 손쉽게 공감하는 여성이기 보다는 악독한 인물이 되어 가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서중원 역시 김혜경과 가까워지면서 돈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고,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셋째로 서명희 역시 비중이 커지면서 전반적인 성적 대립 구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전개가 의도된 것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초반부의 선명한 성적 대립과 유대 구도는 ‘굿와이프’라는 제목을 환기시키며 드라마를 몰입하게 만드는 훌륭한 디테일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굿와이프’라는 영어가 그대로 쓰이면서 더욱더 그 이름이 낯설게 다가오면서 성적 대립과 유대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인상적인 장면 연출 역시 현저하게 줄어든다. 대신에 드라마의 줄거리를 빨리 진행시키기에 급급한 인상을 준다. 원래 드라마 한 회 마다 다채로운 인상적인 장면들이 존재했고, 소소한 디테일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인상적이고 실제로 연출을 멋지게 하고자 노력했을 만한 장면들은 한 회당 한 장면 정도로 양적으로 축소되었고, 질적으로도 많이 약해졌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어 15화의 마지막 컷을 보면 이렇다. 이렇다 할 장면 없이 전개되다가 마지막 야구장에서 김혜경이 자신이 서중원을 변호하겠다고 말하면서 빈 야구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끝이 난다. 이때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탁 트인 야구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식상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미국 로맨틱 코미디에서 연출될 법한 식상한 연출이랄까.


서중원과 김혜경이 호텔에서 관계를 하는 장면도 상당히 로맨틱 코미디에서 볼 법한 진부한 장면 연출이었다. 물론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김혜경, 즉 전도연이 아주 섹시하게 나오는 손꼽히는 장면이긴 하다. 특히 서중원이 센척하고 값비싼 호텔을 빌려서 호텔 문을 못 열어서 쩔쩔 메고 있을 때, 김혜경이 문을 따고 먼저 들어가는 장면은 그때 그녀의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밖에 서중원과 키스하고 와서 이태준과 자는 장면도 꽤 섹시하게 등장한다. 마지막 한장면은 이태준에게 엘리베이터에서 꺼지라고 말할 때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이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또 김혜경 보다는 이태준에게 더 집중되었던 장면이다. 이태준의 정말 진솔한 모습이 등장하는 매우 희귀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센 척하지만 사실 정말 찌질한 그저 한명의 남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진솔함이 아주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선 후기를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