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트

영화 근황

좋아하는 영화감독으로, 어릴 때는 거스-반 산트, 장-피에르 주네, 존 카메론 미첼 정도 말했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재미있게 본 영화는 많지만, 감독을 특정해서 보진 않았다. 그리고 거스 반 산트는 꽤 여러 편 보긴 했지만, 사실 그때 그 감독들의 영화를 그리 여러 편 본 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거의 정확히 10년쯤 지났고, 얼마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영화 감독 셋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 셋이 새롭게 형성된 것 같다. 우디 앨런, 에른스트 루비치, 빌리 와일더.


우디 앨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영화 51편을 다 보았고, 일부는 반복해서 보았다. 빌리 와일더는 아직 6편을 본 게 다이고, 일부는 좀 별로였지만, <The Apartment; 1960>를 5번이나 봐 버렸다. 우디 앨런 조차 6번 본 <Annie Hall; 1967>을 제외하면 이렇게 반복해서 본 영화는 없다. 빌리 와일더의 <Ilma La Douce; 1963>은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영화가 너무 길어서 다시 보기 부담스럽다. 오늘은 에른스트 루비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 밖에 최근 재미있게 본 다른 영화감독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 싶다.


먼저 고전영화를 훑어보자. 첫번째로 조지 쿠커를 말해야겠다. 조지 쿠커는 현재까지 4편 봤는데, 2편은 아주 재미있게, 나머지 2편은 아주 별로였다. <Adam’s Rib; 1949>는 상당히 재미있었고, <My Fair Lady; 1964>도 그럭저럭 볼만 했다. 하워드 혹스는 이제 겨우 2편인데, <Bringing the baby; 1938>은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에릭 로메르는 사계 연작을 다 보려고 했는데, <A Tale of Springtime; 1990>이 생각보단 별로였다. 프랑소와 트뤼포는 <Jules and Jim; 1961>이 생각보다 별로라서 더 안 보고 있다. 잉마르 베리만과 막스 브라더스는 우디 앨런과 에른스트 루비치에 빠진 사람이 안 보는게 이상해 보이지만, 아직 손이 안간다.


근래 영화들로는 노아 바움벡은 <Mistress America; 2015> 이후 그의 뉴욕3부작과 <The Squid and the Whale; 2005>을 봤는데, 3부작 중 2편만 재미있게 봤다. <Mistress America; 2015>와 <Frances Ha; 2012>는 정말 재미있다. 물론 그레타 거윅에 재미가 들린 탓인데,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조연을 포함해서 현재까지 6편을 봤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영화를 본 건데, 그녀가 출연한 경우가 꽤 많다. <Maggie’s Plan; 2015>과 그녀가 감독한 <Lady Bird; 2018>은 아주 재미있다. 국내 영화로는 김종관 영화를 두 편 봤다. <최악의 하루; 2016>, <더 테이블; 2016>인데, 꽤 재미있다. 특히 <더 테이블; 2016>이 재미있다. 그 밖에도 시덥잖은 영화들을 몇 편 꽤 재미있게 봤다.


이제 에른스트 루비치 영화를 해보자. 에른스트 루비치는 <The Oyster Princess; 1932> 이후로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나에게 루비치는 안 좋아할 수가 없는 감독이다. 현재까지 11편을 보았고, 그의 영화 75편을 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I Don't Want to Be a Man; 1918>, <Meyer from Berlin; 1919>, <The Doll; 1919>, <The Oyster Princess; 1919>, <The Student Prince in Old Heidelberg; 1927>, <Trouble in Paradise; 1932>, <Angel; 1937>, <Ninotchka; 1939>, <The Shop Around the Corner; 1940>, <To Be or Not to Be; 1942>, <Heaven Can Wait; 1943>까지 보았다.


이 중에 몇 편은 사실 별로였지만, 더 예전으로 갈수록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예외는 있다. 따로 후기를 남긴 영화들을 제외하고 몇 편을 하나씩 언급하기로 하자.


먼저, <Meyer form Berlin; 1919>는 루비치가 직접 배우로 출연도 하는데,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The Doll; 1919>는 거의 <The Oyster Princess; 1919>에 버금가게 재미있었다. <The Student Prince in Old Heidelberg; 1927>는 처음으로 본 그의 영화 중 슬픈 영화였다. 그에게 이런 비극도 가능한가 싶어서 내심 놀랬다. 막판까지 해피엔딩의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끝끝내 없었다. 이 두 영화는 최근에 본 루비치 영화 중에서 최고였다. <Angel; 1937>, <Ninotchka; 1939>, <Heaven Can Wait; 1943>는 다소 실망스러웠기에 후기작들은 대체로 별로인가 싶었는데, <To Be or Not to Be; 1942>는 다시 꽤나 재미있어서 의혹을 씻겨 주었다.


그동안 그의 영화에 대한 후기에서 언급한 특징들을 제외하고서, 기록차원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 싶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화폐나 섹스에 대한 위트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먼저 공간, 특히 문을 통해 다루는 그의 공간배치는 흥미롭다. 그가 대사를 통해서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극적인 감정전환과 농담을 마치 그가 문을 통해 급작스럽게 배경을 바꿔버리는 것에 유비되는 것 같다. 가장 극적인 것이 <To Be or Not To Be; 1942>였던 것 같다. 물론 <Angel; 1937>에서도 매우 그렇다.


그는 언제나 전형적인 낭만적 무드를 자극하는데, 도대체 언제즈음부터 저런 전형이 생겨났는지 궁금하다. 가령, <The Student Prince in Old Heidelberg; 1927>에서 꽃밭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 장면은 유난히 <Big Fish; 2003>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는 단편적인 사례일 뿐이다.



 

나는 그의 무성영화에 나오는 음악이 좋다. 다른 무성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피아노 소리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또한 극적이고 낭만적이다. 항상 그렇지만, 극적인 상황과 극적인 음악은 영화보며 늘 고양된다. 저번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피아노연주와 함께 상영된 루비치 영화를 못 본 것은 정말 안타까운데, 그런 기회가 은근히 자주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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