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트

후기: Ernst Lubitsch, <Trouble in Paradise>, 1932



아직 몇 편 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본 에른스트 루비치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고르라면, 1919년작 <The Oyster Princess>와 1932년작 <Trouble in Paradise>를 꼽고 싶다. 이 영화를 본 지는 몇 주는 지났지만, 짧게 라도 후기를 남기고 싶었다.


 – 우선, ‘Trouble in Paradise’는 국내 여러 DB에서 ‘천국의 말썽’이나 ‘낙원에서의 곤경’ 등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글에서 나는 ‘천국의 말썽’으로 쓰고 싶다. Trouble을 곤경이 아니라 말썽으로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다만 ‘에서의’가 아니라 ‘의’로 쓰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다소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대신 중의적으로 들리고 흥미롭다. 영화는 다음 가사의 노래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trouble in paradise’라는 표현이 바로 등장한다.


“Most any place can seem to be a paradise. / While you embrace just the one that you adore. / There needn't be an apple tree with magic powers. / You need no garden filled with flowers to taste the thrill of sweet, greed hours. / Gentle perfume and cushions that are silk and soft. Two in the gloom, that is silent but for sighs. / That's paradise, while arms entwine and lips are kissing. / But if there's something missing, that signifies / Trouble in paradise.”


<천국의 말썽>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Lubitsch Touch’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 된 작품이라고 한다. ‘루비치 터치’라는 말은 여러 비평가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 아무거나 하나를 인용하자면, “루비치식의 교활할 정도로 매끈한 유머감각, 동시대의 점잔 빼는 관습을 조롱하며 섹슈얼리티라는 위험한 테마를 정교하게 다루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루비치 터치’는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 시네21(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26961),

 루비치닷컴(http://www.lubitsch.com/touch.html)


<천국의 말썽>에서의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뛰어난 도둑 커플인 가스통(허버트 마셜)과 릴리(미리엄 홉킨스), 그리고 파리 향수회사의 소유주 마담 콜레(케이 프란시스). 가스통과 릴리는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도둑질 실력에 감탄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함께 2인조 도둑질을 하는데, 그러던 중 마담 콜레의 매우 값비싼 가방을 훔친다. 한편 마담 콜레는 파리 향수회사의 소유주로, 원래 향수회사를 경영하던 남편과 사별하고서 회사의 전권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기인지 나타나지는 않으나, 대공황 즈음의 풍경을 묘사한다(영화는 1932년작이다). 그리고 콜레는 경제공황시기에 회사의 경영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며, 회사수익으로 사치만을 일삼고, 물론 노동자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더불어 두 남성을 저울질 하며, ‘사랑놀이’를 한다. 그러던 중 콜레는 가방을 잃어버리고, 가방을 돌려주면 거액을 준다는 광고를 낸다. 가스통과 릴리는 가방을 찾은 척 돌려주기로 하고, 가방을 돌려준 이후에는 콜레의 부에 놀라, 콜레와 가까이하여 더 큰 돈을 훔치기로 한다. 그렇게 가스통은 콜레의 비서가 되고, 릴리는 가스통의 비서를 가장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에 해당하는 것으로(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영화는 ‘순전히 돈과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 즉 콜레는 우스꽝스럽고 멍청하게 그려지는데, 가스통의 현란한 말솜씨에 완전히 농락당한다. 그녀는 가스통의 말에 따라 행동하고, 회사의 경영도 그에게 맡긴다. 또한 그녀는 그에게 마음까지 빼앗겨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고자 시도하는데, 통하지 않는다. 특히 두 남자를 좌지우지 하던 그녀의 모습과 대조되어 더욱 그녀를 무력하게 보여주는데, 영화는 순전히 돈, 그리고 그것에 대한 도둑질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릴리가 알아차리면서부터 영화는 돈이 아니라, 섹스와 사랑, 그리고 마음을 훔치는 내용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변모한다. 이러한 극적인 전환은 앞으로도 등장하는데, 아주 세련되고 흥미진진하게 이루어진다. 루비치의 매력은 정말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전환은 아마도 영화의 도입에서부터 빈번하게, 그리고 크고 작게 등장한다. 낭만적인 음악에서 시작하다가, 스릴러를 하는 것 같더니, 다시 낭만적인 내용이 나오고, 또 코미디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도둑질에 대한 내용으로 바뀐다. 이러한 극적인 구성이 초반 20분 가량을 은유하듯 보여준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것들은 주요 등장인물 세명이 모두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콜레는 아주 콧대 높고 회사도 남자도 좌지우지 하는데, 가스통에게 마음이 사로잡히면서부터 남자의 말에 홀린 가녀린 여자로 탈바꿈 된다. – 이러한 장면전환에서 가장 중심적인 소재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그리고 음악)이다. 의미부여를 하자면,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어와 영어가 뒤섞인 대화들은 영화에서 ‘말’이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릴리의 질투가 시작된다. 릴리는 가스통에게 적은 액수라도 돈을 훔치고 빨리 떠나자고 다그치고, 가스통은 더 많은 돈을 훔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콜레에게 흔들릴 듯 말 듯 한다. 가스통은 콜레에게 마음을 빼앗길 듯 말 듯 하면서, 결국 빼앗기는데, 이때 콜레의 모습은 정말 섹시하고, 또 바로 이 장면에서 가녀린 여자 콜레는 남자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으로 극적으로 변모한다. 영화에서 가장 정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콜레는 가스통에게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고, 그런데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를 유혹한다.


영화의 정점에 해당하는 이 장면 즈음부터 엔딩까지, 영화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 수 없도록 하는데, 아주 세련되고 유머러스한 대사마다 영화의 흐름은 순식간에 전환된다. 이러한 장면 전환에 릴리도 한 몫하는데, 릴리는 돈 보다는 사랑을 좇는 질투심 많은 여자와 사랑 대신에 돈을 좇는 상처 받은 여자의 모습을 왔다갔다 한다. 이 무렵 영화는 매 장면마다 재미있고 정말 흥미진진하다. 가스통이 도둑임이 폭로된 이후에도 이 사랑의 ‘도둑질’은 계속되는데, 마지막 결말 마저도 아주 극적이다. 가스통은 결국 릴리와 함께 떠나는데, 떠나는 택시에서 이들의 도둑질 놀이(?)는 결국 가스통과 릴리의 2인조 도둑들이 훔친 것은 돈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이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는 단순히 식상한 비유가 아닌데, 돈과 사랑, 그리고 상대를 왔다갔다 하는 도둑질이 결국에 정말로 훔쳐낸 것이 ‘진주 목걸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지극히 자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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