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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음악잡담 또는 록의 죽음에 관하여


David Bowie,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1. 


몇 달 전, 한 중앙일간지 칼럼에서 ‘청년들이 록음악을 듣지 않는 이유’라며 어느 비평가가 ‘록의 죽음’과 ‘록의 중흥’을 논한 적이 있다. 물론 이 글은 형편없는 것이었는데, 리스너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느리고 점진적인: 록의 죽음에 대해’라는 어느 음악비평을 읽은 일이 있다. 여기서 글쓴이는 ‘록의 죽음’과 ‘힙합의 성공’을 대비하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연관 시켰다. 이 글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2. 


내 또래 세대는 록음악이 이미 죽은 다음이었다 – 사실 록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유비된다. 록음악을 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내 세대는 90년대의 어느정도 연장선에 있었다. 때문에 나는 80년대의 메탈이 아니라, 90년대 ‘그런지(grunge)’에 내 정체성을 두는 편이다. 덕분에 그런지를 엄청 듣던 때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시애틀 4인방, ‘Nirvana’, ‘Pearl Jam’, ‘Sound Garden’, ‘Alice in Chains’뿐만 아니라, 수십개의 그런지 밴드 음악을 들었다. ‘Mudhoney’, ‘Smashing Pumpkins’, ‘Hole’, ‘Melvins’, ‘Seven Mary Tree’, ‘Silver Chairs’, ‘Stone Temple Pilots’ 등. 90년대 Grunge와 Alternative의 열광은 대단한 것이었다. REM과 Sonic Youth도 당시 그런지 음반을 냈었으니 말이다 – REM의 1994년 <Monster> 음반과 Sonic Youth의 1992년 <Dirty> 음반을 보라. 그리고 이 열광에 ‘Beck’을 빼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90년대는 록의 마지막 중흥기였다. 2000년대에 잠시 Korn같은 Nu Metal이나 Nine Inch Nails같은 Industrial Metal이 흥했던 듯싶은데, 사실 메탈은 내 취향이 아니었을뿐더러, 그 소동도 잠시 뿐이었다. 한편 록 음악씬에서 반짝 흥했던 것은 ‘개러지(Garage)’였다. 개러지는 사실 꽤 내 취향이었는데, 어쨌든 유행은 길게 가지 않았다. Strokes가 유명했던 듯싶은데, 나는 그보다 White Stripes나, Gossip, Yeah Yeah Yeahs 등을 더 좋아했다 - Pack A.D.는 아끼는 밴드였으나, 3집부터는 음악이 망해서 안 듣는다. 어쨌건 개러지 그 이후로는 무수한 인디음악들이 록을 잠식해 나갔다. Vampire Weekend나, Mac DeMarco, Animal Collective, Arcade Fire, Wavves, MGMT 등. 예가 적절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서프(Surf)’의 부활도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흐름이었다. Beach Boys 이후, 서프팝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 것은 Surfer Blood였다. 이들은 1집 이후 별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나에게 서프팝 내지는 서프락을 알려준 첫번째 밴드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다. 이들의 라이브 영상도 종종 보는데, 라이브의 특성상 전자음이 사라져서 더 개러지적인 것이 꽤 그럴싸 하다.


물론 영국의 흐름은 다소 다른 것이었다. 영국은 The Smiths의 맨체스터 사운드 이후, 슈게이징(shoegazing), 브릿팝으로 차례로 유행이 옮겨갔다. 물론 나는 슈게이징 이후, 또는 그 무렵 영국에서 출현한 ‘트위팝(Twee Pop)’의 계보학적 중요성이 있지 않나, 싶다. 오늘날 트위팝은 인디팝의 특이한 표현처럼 여겨지지만, 이는 90년대 미국의 그런지/얼터너티브와는 상이한 영국적 맥락이면서도, 또 동시에 그런지의 원형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런지/얼터너티브의 상징적인 밴드인 Nirvana의 1994년 <MTV Unplugged in New York>에서 Nirvana는 영국 트위팝 밴드인 Vaseline을 몇 곡 커버한다. Nirvana의 많은 음악적 요소들을 우리는 Vaseline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EP만 3장 내고 풀앨범 한 장 없이 사라진 이들이었다 – 이후 2000년대 즈음이었나, EP 3장을 한장으로 모은 앨범이 발매된다.


오늘날 트위팝은 ‘슈게이징적인’ ‘인디팝’ 같은 것으로 통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예컨대 Pains of being pure at heart는 트위팝 밴드로 불리기도 하면서도, 또 동시에 이들이 트위팝이라고 불리는 것을 ‘농담’처럼 여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트위팝의 이런 모습은 미국의 ‘안티포크(Anti-Folk)’와 닮았다. 안티포크라는 말은 Michael Shocked나 Regina Spektor 같은 것을 일컫기도 하면서도, 때로는 Moldy Peaches 같은 포크펑크(?)를 지칭되기도 한다. 특히 Moldy Peaches는 Vaseline과 시기적으로, 정서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사실 최신의 흐름들은 잘 모른다. 요새는 ‘Math rock’이란 것도 인기를 끄는 것 같다. Mac DeMarco 같이 싸이키델릭하면서도 ‘stoned한(?)’ 스타일의 음악도 인기를 끄는 듯 하다. 물론 빼먹은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수 많은 장르들도 있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는 ‘록의 중흥’이나, ‘죽음’ 같은 것을 설명하는데 그리 유익한 정보들은 아니다.


내가 아는 90년대 이후 록음악의 ‘죽어가는’ 역사는 여기까지다. 어쨌거나, 이렇게 록은 90년대 이후, 자잘한 씬들만 남기면서 천천히 죽어갔다. 록은 재즈 이후 대중음악의 상징이 되었으나, 언젠가부터 록은 ‘올드한’ 이미지가 씌워졌고, 가장 트렌디한 이미지는 일렉트로닉과 힙합이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후자의 성장은 명백하다. 오늘날 피치포크에서 탑을 차지하는 것은 거의 힙합이다. 록은 이제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3.


그러나 록의 죽음에 대한 진단은, 한편으로 억울하다. 오늘날 록의 죽음에 대한 진단은 한편으로 객관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록음악의 음악적 혁신이 그동안 부단히 계속되어왔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록은 처음부터 분열되었고, 또 만개하였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록의 기원은 ‘로큰롤’에서 찾는다. 블루스와 힐빌리 등의 음악적 기원을 두고 등장한 혼종이었다고 흔히 말을 하며, 으레 Elvis Presley를 언급한다. 그리고 Beatles가 등장했다. 비틀즈는 진정한 ‘록의 전형’이었다. 가장 상징적인 음반은 물론 1967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Beach Boys의 <Pet Sounds> 보다 1년 늦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위 ‘페퍼상사’ 음반의 마지막 트랙, ‘A Day in Life’는 록의 전형을 알리는, 가장 화려한 트랙이었다. 이 곡은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가 각자 쓴 데모곡 두개를 가지고 한 곡으로 짜맞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록은 ‘스튜디오에서’ 창조되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의 대중음악의 전형이었던 ‘재즈’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레코딩은 이제 단순한 녹음이 아니라, 창작 행위가 된 것이었다. 또한 음반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비로서 음반 단위의 미학이 명시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록은 처음부터 ‘현대적’ 대중음악의 원형이었다 - 심지어 ‘페퍼상사’ 음반은 정치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했는데, 비틀즈가 당시 반전평화 운동의 핵심이었던 ‘히피’ 컨셉을 가지고 온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페퍼 상사’ 이후에 나온 <Magical Mystery Tour>도 마찬가지인데, 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은 심지어 ‘All you need is love’였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 대중음악의 모든 장르들은 록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록은 그 전형을 알리던 1960년대에 이미 단일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에는 Jimi Hendrix는 이미 그때 있었고, Bob Dylan의 <Highway 61 Revisited>이 나온 건 그 이전 1965년이었다. Led Zeppelin의 1집은 1969년이었고, King Crimson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도 같은 해에 나온다. Doors의 1집 음반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196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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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ots에 대해서 빼먹었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합니다. www.uec2018.com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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