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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잡담: Woody Allen, <Manhattan>, 1979



근래에 우디 앨런의 <맨하탄>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씩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정말 매력적인 영화이고, <애니홀>보다도 더 근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맨하탄>에 나오는 몇몇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1. 첫 장면은 뉴욕의 전경에 째즈가 흘러나오고 우디 앨런(아이작 역)의 독백이 나온다. 첫 대사는 "그는 뉴욕을 흠모한다." 한참 흘러나오는 째즈와 뉴욕시의 전경, 그리고 히스테릭한 우디 앨런의 대사는 그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보기에 뉴욕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그는 뉴욕을 "흠모한다."


2. 독백 이후에 등장하는 첫장면은 식당에서의 대화장면이다. 이 장면부터 꽤나 코믹한데 우디 앨런의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디 앨런은 자기 친구, 마이클 머피(예일 역)가 지적인 말을 하고, 나이 어린 자기 애인, 마리엘 헤밍웨이(트레이시 역)이 귀담아 듣고 있자, 벌써 아니꼽게 생각하고 대화 중간에 일부러 껴든다. 게다가 암걸릴까봐 담배도 피지 않으면서, 멋있어보이려고 담배를 피고, 연기는 빨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 어린 그의 여자친구는 우디 앨런의 행동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우디 앨런의 전 아내 이야기가 나오는데, 메릴 스트립의 극중 이름은 하필 질이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이다. 식당 장면 이후 우디 앨런과 머피가 길을 걸어가며 대화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사실 두 사람이 나란이 걷는 장면은 그의 영화에서 매우 빈번하게 나오는 장면이다.


3. 조용한 째즈 선율에 스탠드 하나만을 켜고 우디 앨런과 헤밍웨이가 대화하는 장면은 예쁘다. 꽤나 긴 롱테이크로 보여지는데, 두 사람은 화면의 한 귀퉁이에서 대화한다. 우디 앨런은 그녀 주변의 다른 남자들을 질투하면서도, 그녀는 너무 어리다고 나이 많은 자기 말고 다른 젊은 남자를 만나라고 자꾸 타이른다. 사실 극중에서 그녀는 17살 고등학생이고, 우디 앨런은 42세에 탈모가 있고 이혼을 세번이나 한 아저씨다.


4. 다이앤 키튼(메리 윌키 역)과 우디 앨런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금세 친밀해진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녀의 백치미를 툭툭 무시하지만 그녀도 거기에 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유부남인 머피의 내연녀이다. 둘은 거리를 걷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식당에 가고, 다리 밑에서 야경을 구경한다. <맨하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에 하나이다.  


5. 다이앤 키튼과 우디 앨런은 또 다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비를 맞고 어느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간다. 이 장면에서 다이앤 키튼을 은근 슬쩍 섹슈얼하게 연출하는데, 우주를 배경으로 두 사람과의 조근조근한 대화는 꽤나 인상적이다. 이들은 행성 사이로 걷기도 하고, 토성을 배경으로 대화를 하기도 하는데, 아주 어두운 공간에서 이들은 작은 불빛 사이로만, 혹은 그림자으로만 보인다. 이들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6. 영화를 보는 장면은 언제나 우디 앨런에게 중요하다. 헤밍웨이와 우디 앨런은 침대에 누워서 누들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영화를 본다. 우디 앨런에게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이고, 때문에 아주 낭만적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범죄와 비행>에서의 영화보는 장면을 훨씬 더 좋아한다.


7. 다이앤 키튼과 머피는 헤어지고, 우디 앨런은 헤밍웨이와의 연애를 끝내고 다이앤 키튼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다이앤 키튼과 머피는 다시 재결합을 선언한다. 물론 그의 실제 아내와는 아직 이혼하지 않고 내연관계를 갖는다. 혼자가 된 우디 앨런은 헤밍웨이를 그리워하면서 쇼파에 홀로 누워서 이상한 생각들을 녹음한다. 이 장면도 우디 앨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따금 그의 영화에서 비슷한 의미를 담은 장면들이 나온다.


8. 맨하탄에서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역시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영국으로 떠나는 헤밍웨이에게 우디 앨런은 예고 없이 나타나서, 그녀에게 용서를 빈다. 영국으로 떠나지 말라고도 하고, 그러나 헤밍웨이는 고작 몇개월뿐아니라며 그를 타이르는데, 우디 앨런의 성격을 아주 잘 묘사하는 장면이다. 특히 아주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짝 올려다 보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부부일기>에서도 유사하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