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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우디 앨런에 대한 잡담



지금까지 본 우디 앨런 영화들;


1972,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

1977, <애니홀>,

1979, <맨하탄>,

1985, <카이로의 붉은 장미>,

1992, <부부일기>,

1994, <브로드웨이를 쏴라>,

1996, <에브리원 새즈 아이 러브 유>,

2003, <애니씽 엘스>,

2008,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2011, <미드나잇 인 파리>,

2012, <로마 위드 러브>,

2015, <이레셔널 맨> 


우디 앨런 영화를 지금까지 총 12편을 보았다. 꽤 많이 보았는데, 그가 얼마나 많은 영화를 찍었는지 안다면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우디 앨런은 지금까지 47편의 영화에서 감독을 맡았고, 50편의 영화에서 각본을 썼으며, 55개 영화에서 배우로 출연하였다. 감독을 하거나, 각본을 쓰거나, 배우로 출연한 총 영화의 수는 73편이다. 그러니까 내가 본 영화는 아직 1/5도 미치지 못한다. 감독한 영화만 계산한다고 해도 1/4를 간신히 넘은 수치이다. 죽기 전까지 우디 앨런 영화를 전부 다 보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우디 앨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 <영화의 이해>에서 였다. 이때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별로 기억에 중요하게 남지는 못했었다. 그저, 유명한 영화였다, 라는 기억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디 앨런의 영화를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된 것은 2013년도 였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서 불안감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영화를 한편 보기로 하였는데, 그 영화가 바로 <애니홀>였다. 과거 수업 때, 우디 앨런을 들은 기억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쨌건 나는 이때부터 바로 그의 영화에 매료되었다. 이때부터 우디 앨런 영화를 연달아 보았는데, 그 영화들이 <카이로의 붉은 장미>, <맨하탄>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 세편의 영화가 우디 앨런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다. 두 편의 영화를 여기에 더 추가한다면 <부부일기>와 <애니씽 엘스>를 꼽고 싶다. 이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역시 가장 처음 본 <애니홀>이다.


우디 앨런은 언제나 영화에서 똑 같은 농담을 한다. 성과 사랑에 대해서나, 예술이나 정치에 대해서, 언제나 우디 앨런 특유의 농담을 확인하는 것이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애인에게 왜이리 히스테리를 부리냐며 생리냐고 한다거나, 프로이트를 읽어보라고 한다거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장인어른에게 딴지를 건다거나 하는 식이다. 예술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면 그걸 궁시렁거리면서 무시하는 농담도 있다. 영화에 자주 동양인 여성을 엑스트라로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 그가 나이 어린 한국계 미국인 순이와 결혼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추문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봐봐, 내 성적 취향 정말 일관적이지?!’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애인에게 하는 찌질한 행동들을 희화화시키는 것 역시 자주 나오는 그의 유머인데, 나는 사실 이점에서 우디 앨런의 영악함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출은 찌질한 남성성을 희화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그 찌질한 남성성을 종국에는 낭만적으로 연출함으로써, 이를 묘하게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주인공 남성은 찌질하기 그지 없지만, 문화적으로 박식한 남성이다. 저명한 대학 교수(부부일기, 이레셔널 맨)이거나, 지적인 코미디언(애니홀), 소설가(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이들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비록 매우 우스꽝스럽게 연출시키기는 하지만 이들 주인공들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자신의 문화적 소양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의 찌질함은 진실함이나 어떤 남성의 낭만 같은 것으로 마지막에서는 극적으로 연출시키는 것이다.


상대 여성에 대한 연출은 다소 엇갈리는데, 무조건 더 나은 조건의 상대가 나타나서 금새 바람을 피우는 모습(미드나잇 인 파리)이거나 바람을 피지 않고서는 못 버티는 모습(애니싱 앨스)이기도 하고, 찌질한 남성을 타이르고 지적하는 어리지만 현명한 모습(맨하탄, 부부일기)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들 여러 모습들이 동시에 연출되기도 한다(이레셔널 맨). 어떤 의미로는 ‘계산적인’ 또는 ‘silly girl’의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 이 전형적인 성적 스테레오 타입을 희화화하면서 동시에 그가 마지막에 취하는 낭만적 연출에 그의 영악함이 숨어있다.


한편 남성은 전적으로 충동적인 인물이다. 마치 소년처럼 말이다. 이 주인공의 소년적 면모는 여러 영화에서 반복된다. 때문에 그 사례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할 필요는 없는데, 기억에 남는 두 장면이 있다. 첫번째는 가장 유명한 <맨하탄>의 마지막 장면이다. 마지막 여주인공을 빤히 올려다 보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나이 어린 여자의 타이름을 들으면서, ‘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곘니?’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면이다. 몸은 성인이지만 그의 천성은 소년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 있다. 이 영화에는 우디 앨런이 직접 배우로 등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우디 앨런 그 특유의 찌질한 연기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덩치는 건장한 남자 주인공이 약혼자와 싸우고서 침대에 쪼그리고 누워있는 장면은 그 건장한 몸집 속에 숨은 그 소년적 면모를 드러내기 충분했다.


우디 앨런이 자주 사용하는 농담에는 성적인 것이 빠질 수 없다. 그의 영화에서는 불륜이 자주 등장한다. 불륜이 아니더라도 이별이나 이혼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시 옛사람을 그리워 한다거나 하는 내용들이 많다. 상당히 건전한 연애를 하는 것 같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도 생각해보면, 어쨌거나 여주인공은 이미 결혼을 했는데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다루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도 사실 아내 몰래 과거 속의 여인과 연애를 한다. <이래셔널 맨>을 보면 아직 상대를 만나본 적도 없는데, 여주인공의 애인은 ‘너 이제 그 사람과 바람 피울 것 같다’고 말한다. 우디 앨런은 왜 이런 농담들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부부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대학 교수인 주인공은 나이 어린 자기 강의를 듣는 대학생을 남몰래 호감을 느낀다. 그녀는 교수를 존경했지만 교수가 쓴 소설 초고를 보고 실망한다. 마치 불륜을 예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에게 이를 따져 묻는데, 교수 역할의 우디 앨런은 그 특유의 궁시렁거리는 말로 이렇게 대답한다. ‘불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 사실 두 인물이 대화하는 이 장면은 <부부일기>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실 이러한 그의 변명들은 그가 가진 영화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다. 여러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은 역시 <카이로의 붉은 장미>이다. 이는 사실 그가 말하는 ‘영화론’이기도 하지만, 사실 영화의 본질에 대한 그의 견해에 해당하는 것이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잘 알려져 있듯이 폭력과 바람, 도박을 반복하는 남편을 가진 어느 여인이 어느 영화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남편의 여러 폭력적 행동을 뒤로하고 홀로 식당에서 일을 하는 여주인공이 가진 유일한 삶의 낙은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같은 영화인데 두번째 보러 간 어느 날 극장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로 스크린 속 배우가 ‘저기요, 이 영화 두번째 보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을 걸더니 급기야는 스크린 밖에서 뛰쳐나와 여주인공과 도망쳐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영화 속 영화’, 그리고 ‘영화 속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을 연출하는데, 이게 바로 우디 앨런이 말하는 영화의 본질이다. 어쩌면 이는 농담 같은 것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