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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영화 <비포> 시리즈 후기


리차드 링클레이터, <비포 선라이즈>, 1995; <비포 선셋>, 2004; <비포 미드나잇>, 2013


최근에 <비포> 시리즈를 연달아 보았다. 하루에 한편씩, 순서대로. 개인적으로 별점을 매기자면 순서대로 각각, 4점, 4.5점, 3.5점쯤 된다.


사실 처음에는 좀 오글거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는데, 볼수록 꽤 재미있다. 이 오글거림은 첫번째 편인 <비포 선라이즈>에서 가장 그렇다. 90년대 할리웃 청춘 로맨스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다음 편부터는 별로 그런 건 없다. 배우들이 늙기도 했지만. 특히 <비포 선라이즈>는 <청춘 스케치>스럽다. 똑같이 에단 호크가 나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청춘 스케치>를 너무 나쁘게 봐서 그런지, 에단 호크가 절로 싫어졌다. 더불어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되게, 파리에서 온 여자(줄리 델피), 미국에서 온 남자(에단 호크)스러운데, 실제로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라는 영화가 있고, 감독이 줄리 델피라고 한다. 그래도 오글거리라고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는 정도이다.


영화 이야기를 좀 하자면, <비포> 시리즈는 세편의 영화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영화 아이템들이 있다. 나중에 다시 말할 것이지만, 이 아이템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꽤 이 영화의 팬을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연달아서 보았기 때문에 이 장치들이 바로바로 눈에 들어왔지만, 9년마다 작품을 본다면(잘 알려져 있듯이 이 영화는 9년마다 새로 찍어 3부작을 완성시킨 것이다) 아마 팬이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중간중간 악단을 등장시켜 도시에서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을 낭만적이고 꿈같이 만드는데, 특이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배치시켜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연출한다. 몰랐는데 이 감독이 <스쿨 오브 락>의 감독이라고 한다. 음악에 관심이 많고 신경도 많이 썼나 보다. 잘 모르지만. 더불어 두 사람 간의 이별이나 갈등 이후, 두 사람이 머물었던 그러나 지금은 빈 공간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교감의 일치와 불일치에 대한 것이다. 두 사람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서 강렬한 사랑을 경험하였는데, 동시에 묘한 불일치가 영화 전반에 편재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강렬히 이끌리고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되는 관계였음에도 말이다. 물론 이 불일치는 이들이 서로의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한편으로 이들이 서로 다른 국적과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실제로 감독은 의도적으로 불어나 그밖에 다른 나라의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매회 지속적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카페에서는 다양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차례차례 보여주는데, 평범한 교외 카페에서 왜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있나, 하고서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이는 감독이 아주 친절하게 의도한 바를 낯설게, 다시 말해서 선명하게 알려준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잘 통하고 하루 종일 대화를 하지만, 사실 지속적으로 자신의 속내를 숨겨온다. 상대방의 마음이 자신과는 다를 것 같아서. 그런데 서로의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한번씩 등장한다(3편에서는 두 번 등장한다). 1편에서는 후반부 식당에서 등장한다. 핵심적인 장치는 ‘연극’이다. 1편에서는 두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내일 약속에 못 나온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전화’연습’을 한다. (그러니까 전화연습을 위해 일종의 전화통화 연기를 한다) 이때 두 사람은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고백한다. 물론 이 장면은 1편에서 가장 설레는 장면이다. 아마 이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그렇게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2편에서는 이 장면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세 편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다. 10년, 정확하게는 9년만에 파리에서 재회한 이들은 여자의 집에서 여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켜놓고,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흉내 낸다. 3편에서 다시 등장하겠지만, 이때 여자는 차를 타면서 말한다. 씬이 꽤 긴, 롱테이크 장면인데, 당연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보아도 정말 매력적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롱테이크 영상도 아주 매력적이지만, 관객과 대화하는 뮤지션 흉내를 내면서 문득 남자에게 건내는 한마디 질문이 (1편의 식당에서의 연극장면과 동일하게) 연극 속에서 등장하는 진솔한 고백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3편에서 이 ‘연극’은 두 번 등장하는데, 한번은 영화 초반에 나타나는 복선으로 등장한다. 1, 2편의영화 후반부에 가장 낭만적인 장치로 등장해야 할 이 장치가 초반부에 등장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알 수 없게 만드는데, 특히 복선으로 등장해서 더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첫번째 연극은 영화 초반부의 어느 만찬에서 나타나서, 실제로 두 사이의 갈등이 점점 심화된다. 영화 후반부 둘 사이의 갈등 직후, 식어버린 차를 보여주는 장면은 가장 슬픈 장면이다. 1, 2편처럼 둘이 머물었던, 그러나 지금은 빈 공간을 보여주는데,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이 식어버린 찻잔이다. 2편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자의 차 타는 장면과 대비되어 가장 슬픈 장면이다. 그리고 두번째 연극 장면은 3편의 엔딩이다. 물론 낭만적인 장면이나, 1, 2편에 비해 현실적이다.


사실 이러한 영화적 장치들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약간 식상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3편에서의 이런 장치들의 반복은 약간 이 시리즈 팬을 위한 ‘서비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것들은 2편에서는 무엇보다 재미있게 느껴졌지만, 3편에서는 다소 지루했다. 그래서 나는 2편이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