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최국희, <국가부도의 날>, 2018

IMF 세대라서 그런지, 97년 위기를 소재로 했다는 것에서 기대감도 있었지만, 애착감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적으로만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겠다. 기본적으로 테크닉은 부족해 보이고, 메시지는 너무 이해하기 쉬워서 재미를 반감시킨다. 때문에 후기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비평하거나 해석할 여지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몇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첫째. 대학생 때, 어떤 신문에서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다. 청소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는데, 나는 그 사진이 감명 깊어, 당시 활동하던 학내 소학회 ‘삐라’를 만들어 뿌릴 때도 그 사진을 인용했었다. 사진은 바닥을 닦는 노동자를 담고 있었고, 구도를 살짝 기울여 놓아, 생존과 생활을 위해 버텨야 했던 삶의 기울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울기는 다분히 사진가가 의도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의 표현방식은 교과서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부도의 날>에도 물론 그런 구도가 등장하는데, 한강 철교 위에서 어느 가장의 자살을 담는 장면에서 나온다.

둘째. 그런 말이 있다. 시계는 결코 시간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지만, 고장나서 멈춘 시계는 보통 틀리지만 한번은 반드시 맞는다고. 나는 이 비유를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처음 들었다. 물론 대학생 때였다. 물론 영화는 이 은유를 차용한다. 고장난 시계가 곧 마르크스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늘 냉철하고 정확한 분석을 내리는 김혜수가 유일하게 (IMF에 관해서) ‘정치적 해석’을 내리는 순간, 시계는 멈춰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급진적인 수사를 기대했지만, 시계는 그 정도에서 막을 내린다.

셋째. IMF 협상을 할 때, IMF 담당관이 한국 대선후보의 각서를 요구하고, 한국측에서 이를 수용하자,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가?’하고 묻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장면에서 한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좌우 눈치를 살피는데,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협상을 하니 상대측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제조건’을 달고서 대선후보의 각서를 요구했는데, 한국측이 이를 받았고,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다니’, 하고 당황하고, 어떤 의미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석될 때, IMF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상상하게 해준다. 물론 이는 김혜수가 사표를 내기 전 마지막으로 ‘IMF 협상의 기록’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과 일관적이다.

넷째. 사실 이 부분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영화에서 가장 촌스럽고, 실망스러운 부분은 당연 김혜수와 허준호가 만나는 장면인데, 그래도 나는 그 장면을 비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둘의 만남은 너무나 생경해서 몰입 자체를 깨어 버리는데,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둘의 만남이 의미하는 것은 최소한 ‘이질적인 것 간의 봉합’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물론 ‘가족’이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 담당자와 ‘쇳밥 먹는 사람’이 갈등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것이 갈등적 관계의 ‘생경한 봉합’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봉합되어 생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언급했듯이 가족주의, 더 나아가 인간적인 것들을 외면하는 것을 통한 환멸을 통해서 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김혜수는 대출을 위해서라도 다시 회사로 복귀해서 사표를 다시 주워 담고, 한국은행 내에서의 투쟁을 계속 했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엔딩에서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생존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여주는데, 김혜수만큼은 자기환멸을 하지 않은 채 고고하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 나는 오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