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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후기: Woody Allen, <Wonder Wheel>, 2017



개봉일에 맞춰 본 영화는 내 인생에 극히 드물다. 어쨌거나, 영화는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었다. 웹상 평가는 상당히 저조한데, 개인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코니 아일랜드’의 1950년대 한 가난한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코니 아일랜드의 썬더볼트 롤러코스터 아래 위치한 집은 <애니 홀>에서 엘비 싱어(우디 앨런)이 어린 시절 살던 곳으로, 물론 실제 존재하는 곳이다. <애니 홀>에서 엘비 싱어는 그곳을 회고하며, ‘의사는 기억이 과장됐다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 롤러코스터 아래 있는 집에서 살았다’고 말한다. 극중 그곳은 롤러코스터로 매일 같이 집이 흔들리는데, <원더 휠>에서 그곳은 사격게임장 옆에 위치해서 늘 시끄러운 총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지니(케이트 윈슬렛)은 늘 두통을 달고 산다.


회전목마를 운전하는 가난한 (술주정뱅이) 중년남자, 그리고 그와 동거하는 (그를 특별히 사랑하지 않지만 고마운 마음에 함께 사는) 중년여성, 그 여성이 자신의 전 남편과 낳은 (늘 불을 지르며 사고를 치는) 사내아이, 또 남성과 죽은 전 부인에게서 낳은 (그러나 5년 전 마피아를 따라 집을 도망갔다가 마피아에 쫓겨 도망 온) 딸. 그리고 해변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젊은 희곡작가 남성. - 영화는 늘 그렇듯이 불륜과 복잡한 사랑의 관계들로 점철되어 있고, 사랑은 이번에는 더 노골적으로 ‘광기’를 보여준다. 우디 앨런에게 사랑은 ‘광기’이자,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언제나 실망만 안겨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지니(케이트 윈슬렛)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원더 휠>은 2013년작 <블루 재스민>과 거기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영화에서 지적하는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 우선 공통점이라면 두 영화 모두에서 주인공(지니와 재스민)은 ‘화려했던’ 과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신경증을 앓고 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의 폭발적인 감정연기에 초점을 두고 보여준다는 점 역시 같다. 그러나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하는데(‘혹시, “블루 문” 알아요?’, 하고 말이다), <원더 휠>에서 지니는 어쨌든 극중 청자와 대화를 한다. 물론 이 자체에 큰 의미는 부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블루 재스민>과는 달리 <원더 휠>은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을 의도적으로 깨는 ‘극적인’ 부분은 없었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엔딩이 중요하기 때문에, 엔딩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물론 대화를 하다가도 자연스레 그녀의 격정적인 감정연기에 주목하도록 하는 프레임 이동은 점점 그녀의 ‘광기어린’ 모습을 목도함에 따라, 그녀를 (이입이 아니라) 객관화시킨다. 그러나 <블루 재스민>에서는 재스민의 ‘도취적인’ (그리고 속물적인) 모습에 의도적으로 낭만적인 음악을 갑작스레 배치함으로써 그녀의 모습에 ‘극적으로’ 감정을 이탈시킨다. 그리고 그녀가 혼잣말을 한다는 설정을 볼 때 나는 <블루 재스민>에서는, 시작부터 그녀에 이입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원더 휠>은 그 과정이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말에서의 차이이다. 두 영화 모두에서, (물론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큰 맥락은 다 동일하겠지만), ‘판타지’가 걷히고 난 뒤,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시키는 (그러나 여전히 실재하는), ‘판타지’의 모습이 내 생각에 두 영화에서 다르다.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의 귓가에 들리는 ‘Blue Moon’은 분명 ‘가시적’이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관객들’도 ‘이미’ 알고 있어야 비로소 (진정하게) 기능하는 것이었다 – 앞서 살짝 언급했듯이, 재스민은 지속적으로 (형식적으로 그것은 독백이었지만) 관객들에게 ‘Blue Moon을 아느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관객들도 이미 알고 있는 그 낯익은 멜로디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관객과 재스민은 그 판타지가 실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분명 우리도 이미 알고 있듯이 ‘실재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더 휠>에서 (그 비참하고 역겨운 상황에서도) 지니와 험프티의 동거관계를 지속시키는 ‘판타지’는 오히려 ‘부재함’을 통해서 ‘그곳에’ 판타지가 ‘실재함’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시종일관 끊이지 않고 들리던 ‘황금기’ 재즈는 유독 엔딩에서 만큼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아주 분명한 영화적 기법이었다. 그리고 그 판타지가 부재함으로써, 원래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바로 불륜, 거짓, 살인, 광기, 분노, 무시, 외면, 타협, 굴욕 –!


마지막으로 색채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고 싶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유독 최근작들은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디 앨런은 원래 ‘밝음’보다는 ‘어두움’, 그런 색채를 좋아한다. 이는 분명 그의 변화라면 변화인데, 변명할 여지는 분명하다. 언젠가 고흐가 말했듯이, 사실 밝은 색채는 어두운 색채와의 대비를 통해서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고, 우디 앨런 최근작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원더 휠>은 유독 붉은 색에서 푸른 색으로 색채가 이동함에 따라 주인공들의 심리변화가 두드러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색채는 형식적으로는 코니 아일랜드에서의 창밖 네온사인 등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니와 미키(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섹스장면에서는 해변가에서의 황혼과 그리고 해가 진 달빛이다. 그러나 이 불빛이 은유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는 너무 명백하다. 낭만적 판타지는 아주 찰나의 것이라는 점이다. 황혼은 잠시뿐이니 말이다.


한가지를 빠뜨렸다. 재능있는 희곡작가 캐릭터는 물론 아주 '우디앨런스러운데' (모든 캐릭터가 다 우디앨런스럽지만), 비로소 엔딩에서야, 불을 지르는 소년이 사실 우디 앨런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면 사실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