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트

데이비드 하비의 창비강연에 대한 후기



이 글은 지난 주(2016년 6월 21일)에 있었던 데이비드 하비의 강연에 대한 짤막한 후기이다. 이 강연은 출판사 창비의 초청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크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없었다. 때문에 본 글도 대단히 짧게 이루어질 것이다. 강연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일상의 변모」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고, 강연은 크게 전자에 대한 ‘위기이론’에 대해서, 후자에 대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 되었다. 나는 여기에 3~4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하비의 몇몇 저작들을 읽어보았다면 그가 평소에 어떤 주장들을 하는지 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순환과정에 대한 강조, 그리고 과잉축적된 자본을 지출하기 위한 도시화과정이나 교외화 현상, 실현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약탈적 축적 등이다. ‘약탈적 축적’ 개념은 한국에서도 꽤 논란인듯하다. 질의응답에서도 그에 대한 논평요구가 있었고 하비는 이 개념에 대해서 적절히 설명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하비의 설명은 합리적이었다. 사실 그의 짧은 설명으로 나는 충분히 납득되었다. 그에 따르면 ‘약탈적 축적’은 신자유주의 내지는 금융화 시기에 나타나는 주요한 현상으로 ‘착취’와는 다른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민영화 등과 같은 국가의 (말하자면 가치의) 재분배뿐 아니라, 특히 금융거래에서의 실현문제를 통해서 얻어진다. 


나는 특히 이 부문에서 라파비차스를 떠올릴 수 있었다. 라파비차스는 금융화 시기의 축적이 가지는 주요한 특징은 가계로부터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윤을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사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의 중대한 비밀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에서의 설명을 다른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서비스’를 사고 그 대가로 ‘이자’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리츠증권의 광고문구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정확하다. 메리츠증권은 이렇게 말한다. ‘금융은 돈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금융서비스에서 우린 어떤 만족감을 얻고 돈을 주는 것이다.


질의응답 중에는 ‘위기는 (당신과 같은) 과소소비 때문이 아니라 이윤율 하락 때문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연대의 기사(http://wspaper.org/article/17351)에서 해당 내용이 정확히 올라왔다. 기사의 내용은 하비의 강연을 소개하면서도 과소소비설을 비판하고 이윤율하락설을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아마도 그 질문은 노동자연대 회원의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광경은 한편으로 속류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사회의 모든 것은 내생변수이다.


다음으로 말할 것은 ‘금융화’에 대한 하비의 관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금융화에 대한 ‘고전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었다. 자본축적이 과잉되어, 갈데 없는 자본이 ‘도시의 경관’도 만들고, 해외로 수출되어 제국주의도 만들고, 실물부문이 아니라 금융부문으로 옮겨 금융화도 이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명은 단적으로는 미국의 자본수입이나 국채매매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며, 포괄적으로 말해서 금융을 그저 ‘잉여가치의 과잉’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속류적 해석일 뿐이다. 하비의 답변을 듣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단순재생산’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이는 질의응답 중에 나온 것으로 강의문에서는 그 내용을 찾을 수는 없다(하비는 질의응답 이전에도 강의문과 똑같이 강의하지 않고 왔다갔다 했다). 강의문에 없기 때문에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여기에 옮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단순재생산에 대한 그의 말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아주 간략하게만 말하기도 헀지만 그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자본론 2권에는 ‘단순재생산’에 대해서 나온다. 자신은 요즘 이 부분을 꼼꼼히 다시 읽으니 기존의 생각과는 다르게 읽힌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지속할 수 없다. 우선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단순재생산에서 보면 ‘자본축적’이 ‘무한히’ 계속되는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무한자본축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천히 자본론 2권을 다시 읽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예전에는 이부분을 그저 대충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이 단순재생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무한 자본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무한자본축적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가능성이 ‘단순재생산’ 부분에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내용은 하비가 거의 ‘노망’났다고 생각한다. 우선 ‘단순재생산’에서는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는지 물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감가상각 이상의 자본축적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면 틀린 말이다. 단순재생산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축적은 감가상각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다시 재투자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생산표식의 함의는 잘 알려진 것이다. 재생산표식은 1부문과 2부문의 적절한 비례가 존재할 때 균형이 이루진다는 것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의 함의는 크게 두가지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균형은 ‘가능’하나, ‘어렵다’. 즉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비의 견해를 충분히 수용해서, 그 균형의 가능성이 ‘부정적인 균형’에서 ‘긍정적인 균형’으로 급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부정적인 균형’ 조차도 자본주의에서는 ‘불안정한 것’처럼, ‘긍정적인 균형’도 우리는 ‘불안정’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물론 이것은 하비에 대한 나의 철저한 오독의 결과일 수도 있다. 사실 하비는 ‘균형’에 대해서 말한 바 없다. 다시 말해서 단순재생산 안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불균형한 상황 자체에서 그는 ‘부정적인’ 축적이니 ‘긍정적인’ 축적이니 하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해석 자체가 개인적으로 애잔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재생산표식의 일반적 함의의 두번째는 금융의 존재 필요성이다. 부문간의 잉여가치, 가변자본, 고정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여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금융의 존재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로자는 때문에 3부문으로 화폐 부문을 추가한다. 하지만 화폐를 일반 상품처럼 만들어버리는 해석이었다. 브뤼노프는 3부문을 도입하지 않고 이 재생산표식에서 금융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는 폴리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앞서 설명한 ‘고전적인’ 금융화 해석과 대비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하비 초청강연의 강연문을 첨부파일로 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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