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노트

후기: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문학과지성사, 2015

2015.10.26.

2년전 이맘 때쯤 이런 글을 썼나 보다.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문학과지성사, 2015, "후기"

1. 책이 얇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한병철의 책을 처음읽는데, 들리는 평에 따르면 한병철 사상의 입문서 격이라고 하니, 이 책하나로 저자 자체를 평가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이 책 자체에 대해서는 나의 평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2. 저자는 푸코, 벤야민, 레비나스, 바타유, 바디우, 아감벤, 부버, 일루즈 등 각종 대륙철학자들의 논지들을 짧은 글로 이래저래 잘 엮었다. 그런데 나는 그리 탐탁치만은 않다. 특히 그가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푸코에 대한 부분은 과연 그가 푸코를 진정으로 비판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벤야민도 그렇고, 그가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많은 철학자들의 논의들에 저자는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인상이다. 책 전체에서 그가 진정으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일루즈 정도라고 생각한다(일루즈가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 전반적으로 그의 글은 별로 새롭지 않다. 오히려 '고전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왜이리 독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지 의아하다.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저 재독학자라는 타이틀 때문이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말이다. 비슷한 주제를 탐구하는 서동진 같은 국내 학자의 분석이 훨씬 깊히 있다고 생각한다. (바디우의 서문은 최근 그의 유명세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서문을 읽어봐도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다. 바디우는 기계적으로 저자의 글을 설명하고 있다. 아마 바디우는 그를 진정으로 높히 평가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나의 전반적인 문제의식과 그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닮았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이론의 종말"이라는 부분 때문에 이 책을 샀다.) 그래서 내가 한때 바디우 같은 철학자들을 읽었다(경제학자로 윤소영 선생님도 사실 마찬가지로 읽었다). 그가 중요하게 인용하고 있는 레비나스나 아감벤 등도 내가 재밌게 읽었던 철학자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새롭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한때 철학서들을 읽을때의 내 문체와 얼핏 닮았다는 인상마저 든다. 물론 나는 그보다 훨씬 조야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내 글은 언제나 비문으로 몸살이다.)

5. 사회과학적인 특히 경제학적인 논의가 잠시 등장한다. 바로 진정한 이론의 종말에 대한 내용이고 이는 빅데이터와 베이지언 통계학을 염두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론의 종말은 사실 에로스의 종말, 타자성의 종말이라는 책 전체의 내용과 같은 것이고, 사실 동어반복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여기서 내가 쓰지는 않을 것이지만, 내가 내 식대로 써먹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6. 사실 일찍 자고 싶은데 이 책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린건, 책이 너무 예뻐서 밖에 가지고 나가면 책이 더러워지고 상처날까봐 다 읽고 집에 고이 모셔두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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