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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우디 앨런에 대한 잡담, 두번째

지금까지 우디 앨런 영화목록:


1972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
1973       <
슬리퍼>
1975       <
사랑과 죽음>
1977       <
애니홀>
1979       <
맨하탄>
1983       <
젤리그>
1985       <
카이로의 붉은 장미>
1986       <
한나와 자매들>
1989       <
범죄와 비행>
1992       <
부부일기>
1994       <
브로드웨이를 쏴라>
1996       <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
2003       <
애니씽 앨스>
2008       <
남자의 아내도 좋아>
2011       <
미드나잇 파리>
2012       <
로마 위드 러브>
2015       <
이레셔널 >
2016       <
카페 소사이어티>


현재까지 18편을 보았다. 그리고 영화들을 연도별로 정렬하니 내가 좋아하는 우디 앨런의 영화가 대략 어떤 스타일인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는 1977 <애니홀>에서부터 1992 <부부일기>까지의 시리즈를 좋아한다. 물론 사이의 모든 우디 앨런 영화를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사이에 있는 영화 중에서, 내가 재미없게 느낀 영화는 한편도 없다. 기준으로 사이에 있는 영화들은 모두 별점 4.5 이상이다.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들은 <애니홀>, <맨하탄>, <젤리그>, <카이로의 붉은 장미>까지 연달아 있다.


최근에 우디 앨런 영화는 4편이다. 1973 <슬리퍼>, 1975 <사랑과 죽음>, 1983 <젤리그>, 1989 <범죄와 비행>. 앞에 편의 영화는 1972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 함께 ‘Pre-Annie Hall’이라고 부를만하다. 이때 영화는 B 코미디 영화의 모습을 취하는데, 세편을 보니 확실히 재미있다. 병원에 갔다가 냉동인간이 되어 200년만에 깨어난다거나, 러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 억지로 군대에 끌려가는데 우연히 적의 수장을 물리친다거나 하는 말도 안되는 설정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러한 와중에도 우디 앨런은 사랑을 하고, 주변 인물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들 코미디 영화들을 보면, 영화들에 나오는 많은 것들이 사실 이후 <애니홀>에서도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할 있다. <애니홀>에서의 변화들이 사실 이전작들에서도 그대로 관찰된다는 점은 이때의 코미디 작품들도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단순히 대사나 캐릭터 등뿐만 아니라, 장면 연출까지도 <애니홀> 등장하는 것들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다이앤 키튼에게 우디 앨런이 고백하는 장면인데, 이때 서로는 상대를 앞에 두고서도, 청중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이것은 <애니홀>에서 섹스를 하다 말고 우디 앨런의 영혼이 빠져나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나,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 영화 주인공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여주인공 실리에게 말을 거는 장면과 같은 것이다.


<젤리그> 최근에 우디 앨런 영화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고, 단번에 내가 지금까지 모든 영화들 중에서도 선두그룹에 위치할 만큼 재미있었다. 알려졌다시피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젤리그라는 이름의 가상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우디 앨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밖에 없는 영화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자기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농담을 던진다. 수잔 손택이 나와 인터뷰를 계속하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가 등장하는 자체가 우디 앨런의 농담이다. 우디 앨런은 그런데 농담을 자꾸 하는 것일까. 물론 사실은 <젤리그>에서 모습을 자꾸 바꾸는 젤리그에게서도 답을 찾을 있지만, <슬리퍼> 아주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슬리퍼>에서 다이앤 키튼이 우디 앨런에게 자꾸 농담을 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우디 앨런은 질문에 대해서 방어기제때문이라고 답한다. 방어기제가 어쨌다는 것인지는, 이야기를 해야한다. 이는 그가 가진 일종의 세계관과 관련된 것이다.


이번에 <범죄와 비행> 우디 앨런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8편이나 보도록 내가 지나치게 그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영화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영화 속의 세계는 범죄와 비행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우디 앨런은 신이나 권선징악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이는 <슬리퍼> 대사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다이앤 키튼이 우디앨런에게 이렇게 말한다. “알겠어요 당신은 과학을 믿는 군요. 정치구조도 믿고, 신도 믿죠? 그럼 도대체 믿는 거죠?” 여기에 대한 우디 앨런의 답은 이렇다. “섹스와 죽음! 평생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죠.”


나아가 그는 사랑도 사실 믿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언제나 바람을 피우거나, 성공한 남자를 따라가고, 남자도 역시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이전 사람에 그리워하거나 이끌린다. <부부일기> 보면 역시 이에 대한 명시적인 답을 들을 있다. 불륜을 미화하는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우디 앨런은 불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원래 그런 이라고 답한다.


다시 <범죄와 비행>으로 돌아가자. 사실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들에서 엔딩이 낙관적인 결론이라고 여겨왔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은 다시 시작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결말은 꽤나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와 비행> 우디 앨런의 비관적인 세계관이 그대로 나타났고, 개인적으로 꽤나 솔직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극중에서 우디 앨런의 결말도 그렇지만, 파티 중에 마틴 랜도와의 대화에서 명료하게 나타난다.


<범죄와 비행>에서 가장 예쁜 장면은 당연 그와 미아 패로우가 함께 ‘Singing in the Rain’ 보는 장면이다. 장면만 따로 떼어내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그리고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범죄와 비행이 난무하고, 사랑은 엉망진창인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함이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마틴 랜도와의 대화도 그렇고, 전반적인 스토리도 그렇고, 나는 영화가 그의 방어기제와는 달리, 꽤나 솔직하게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마틴 랜도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자. 사실 권선징악도 신도 없다는 마틴 랜도의 말에 나는 우디 앨런의 대답은 어떨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때 우디 앨런은 의외의 대답을 한다. 바로 그래도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다. 시니컬한 현실의 우디 앨런이 취하는 같은 대답은 극중의 모습과 다소 배치되는 느낌을 받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사실 우디 앨런이 영화를 통해서 지키고자 하는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아마도 그의 자기방어 기제부터 비롯되었을, 낭만적인 판타지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방식 말이다.


사실 이번에 이런 질문을 들었다. ‘ 우디 앨런을 좋아하냐 말이다. 그때는 사실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사실 특정한 영화를 재미있게 수는 있다. 흔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특정한 감독을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필요할 있다. 혹자는 영화의 본질을 신화화라고 말한다. 말에 따르자면, 우디 앨런은 영화의 본질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있다. 우디 앨런에게 영화가 정확히 그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우디 앨런의 영화를 자주 보던 때도 사실 그가 말하는 영화론 가장 부합되는 때와도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맨하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