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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오랜만에 일기

현재 시각은 오전 3시 46분. 늦은 시간이지만 일기를 조금 쓰고 싶어서 글을 쓴다. 오늘은 그냥 주절주절 거릴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어떤 인물과 연락을 했다. 그는 준비하던 것이 아무래도 잘 안풀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물어보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마음이다. 사실 나에게 그는 고마운 존재이다.


꽤 오래 대화를 했다. 거의 3-4시간 정도. 하지만 길게 대화하지 않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쓸모 없는 내용으로 언쟁 아닌 언쟁을 해야했는데, 단지 생각의 차이로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기를 희망한다. 사실 학교다닐 때에도 자주 이런 언쟁 아닌 언쟁을 했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논쟁을 하니까 그와 다시 이야기하는 게 실감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를 처음부터 알던 것은 아니었다. 둘다 복학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사실 그의 스무살 때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에게 스무살, 스물한살은 강렬했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오늘 그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이야기의 9할은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였다(사실 그는 경제학과이다). 그리고 나는 두가지의 답답함을 느낀다. 하나는 경제학에 대해서고, 다른 하나는 나에 대한 것이다. 이 둘은 묘하게 연관된다.


사실 ‘진보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대체로 공통점이 있다. 경제학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그리고 엉터리로 환원한다거나, 가정이 틀렸다거나, 노동자를 무한한 경쟁으로 내몬다거나, 기타 등등. 그냥 경제학은 나쁜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경제학을 화형시켜야 한다고 해도, 그런 죄목으로는 할 수 없다. 사형수가 있다해도, 적어도 그는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의 ‘주류경제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아주 격렬하다. 내 생각에 이것은 아주 감정적인 문제이다. 내가 보는 경제학은 ‘이데올로기’나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자 ‘통치기술’이다. 때문에 나는 이것을 때로는 비판하고, 또 때로는 ‘전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은 흔히 ‘신고전파’를 경제학의 원흉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비판하고 전유해야하는 대상은 바로 ‘(새)케인즈주의’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대경제학이라고함은 새케인즈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사람들이 흔히 비판하는 ‘신고전파’라는 것은 유령(또 다른 표현으로는 허수아비)에 가깝다.


사실 안타깝게도 그는 경제학에 대해서 오해와 편견이 가득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도 조야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공부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경제학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주류경제학자가 되어있다. 나는 수학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리 관심을 가지지도 않지만, 수학신봉자가 되어 있기도 하고, 나는 모든 것을 다 실증해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실증만능주의자가 되어 있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쪽도 아니다. 다만 무시할 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전유해야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또 다른 인물에게는 ‘기왕이면 한글이 좋지만, 국문자료는 없는게 많으니, 없는 것은 영문자료를 읽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나는 영어를 잘해서 영어로 된 것만 읽는다’로 해석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주류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리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수학은 ‘못’하며, 실증연구도 잘 못한다. (영어도 못한다.) 사실 온전히 주류경제학을 착실히 공부해온 사람들과 그 실력을 논할 수 있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나는 기질상 비관적이지도 못하고, 그저 버겁지만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관심도 있을 뿐이다. 나는 그것들은 온전히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