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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여성혐오에 대한 메모 셋: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몇가지 이어서

사건이 발생한지 아직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말이 오고 갔다. 때문에 더 이상 불필요한 소음은 별로 내고 싶지 않다. 담백하게 몇가지 말만 이어 쓰고, 한동안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현재 사건에 대한 여러 글들을 또 읽었다. 이만큼 읽었으면 충분히 읽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이야기는 특별히 더 없는 것 같다.

하루 이틀 사이에, 통계적 쟁점에 대한 논쟁은 좀 더 이어졌다. 특별히 내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강력범죄 여성피해율이 80%라는 숫자는 과장되거나 통계적 오해일 수 있으며, 또한 여성들의 실제 피해는 특히 성범죄에 있어서 통계치는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더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사회에 대한 지배력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때때로 활동가들이나 급진주의자들에게는 ‘불편향성(unbiasedness)’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가 의문이 든다. 편향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해석이나 실천에 있어서 중립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의견을 개진하자는 말이다.

물론 실제 여성들이 피해를 입을 ‘확률’과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껴왔던,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더욱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 ‘공포’는 다를 수 있다(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미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경우의 수, 즉 확률(probability)와 우리가 통제불가능한 미래의 사건인 위험(risk)는 애시당초 다른 것이기는 하다). 그 공포는 엄연하게 ‘실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여성들이 받는 ‘위험’과는 다르다. 통계에 대한 논쟁은 우연하게도 이 둘 사이의 차이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이 위험은 과장이 아니다, 사실이다, 통계가 입증하고 있다’로 시작하였지만, 통계치가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이 지적되자, ‘공포는 통계로 표현되지 않는다, 공포는 정당하다’로 이야기는 달라졌다. 물론 이 공포는 정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공포가 지나치게 과대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할 필요 역시 있다. 우리가 필요이상의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실제 위험과 동일한 공포를 가지며 최적의 위험을 계산하는 생활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공포는 실제 위험과 다르기 때문에 실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그렇기 때문에 공포와 위험이 같아지는 순간, 공포는 사라지고 위험은 ‘리스크프리미엄’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우리는 실제로 위험한 것도 위험하지 않다고 느끼며 살고(가령 안보문제나, 안전문제),  위험하지 않은 것도 위험하다고 느끼며 산다(가령 안전한 화학물질이나 가공식품). 또한 애시당초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현재의 사건을 다시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을 더 과장하는 것이 위험하고 부당하며, 오히려 보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애시당초 우리는 설명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