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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독서노트: Kliman, Andrew.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한울. 2012



Kliman, Andrew. (2012).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한울.


0.

클라이먼의 책을 읽고 몇가지 후기를 쓰고자 한다. 이책은 라파비차스의 책을 읽고서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하였다. 라파비차스는 다른 현대 마르크스경제학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았지만, 클라이먼이나 뒤메닐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라파비차스는 금융화된 현대자본주의는 은행, 기업, 가게의 금융에 대한 행태변화로부터 벌어진 근본적인 변화로 지적하고, 이 변화는 결코 단순히 정치나 정책 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고유의 성격으로 간주한다. 한편 뒤메닐에게 현대 금융자본주의는 정치적 결과물이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전문관리자 집단이 금융에 대한 규제 완화와 사적 이익추구로 금융부문에 이윤율이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재의 위기에 있어서도 이윤율은 상승하였기 때문에 이윤율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한편 클라이먼은 이들 주장들에 대해서 비판한다. 특히 비판의 포인트는 뒤메닐에게 상당부분 가있다. 

1.

이 책에서 크게 세가지의 발견을 주장한다. 1) 미국법인 기업의 이윤율은 1980년대 이후 회복되지 않았다. 2)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따라 이윤율이 회복되었다는 설명은 틀렸다. 3) 미국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특히 앞선 두 주장은 금융화를 주장하는 논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저자는 기존의 통설이나 전통적인 좌파의 해석을 거부한다. 통설에 따르면, 현재의 위기는 금융위기이며, 1980년대 이후 회복된 금융자본주의가 그 원인이다. 또한 이러한 설명은 자본주의의 금융화를 억제하고 적극걱인 케인즈주의 정책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편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환원하고 대안도 그렇게 맞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비판했던 바와도 같지만, 실증적으로 잘못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레이건이 출범했던 1980년대 이전인, 1970년대에 이미 침체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윤율에 대한 쟁점을 정리해야만 한다.

특히 뒤메닐&레비와 같은 급진 물량주의자들(Radical physicalists; 번역에는 물량주의자라고 나오는데, 원문은 Radical physicalists다. 물량주의라기 보다는 물리주의에 가까워 보이고, Marxian econophysics와 같은 부류와 급진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를 지칭하고자 하는 것 같다)은 현재가치로 환산한 이윤율 추계를 볼 때, 이윤율이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이윤율 하락’에 의한 위기원인을 부정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 방법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가치 이윤율은 축적률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자신들이 현재가치 방법의 이점으로 제기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조정도 적절하지 않고 실제 기업에서의 회계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이윤율이 하락하거나 상승했다고 말할 때에 그 시작점과 끝나는 지점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윤율의 변동에 있어서, 장기적 추세와 단기적 순환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라 역사적 비용으로 계산하면, 이윤율은 하락했다. 또한 축적률 역시 함께 하락했으며, 축적률을 비롯하여 제조업 부문 성장률 부진이나, 미국 정부의 부채 증가 등 전반적인 장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전후경제와는 달리, ‘자본의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수익성이 다시 회복될 수 없었다. 자본의 파괴는 수익성 회복을 위해 공황기에 나타나는 폭력적인 상황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윤율은 하락했다. 그렇다면 이윤율은 왜 하락한 것일까. 우리는 흔히 이윤율에 대한 분해식을 떠올린다. 이 분해식은 여기서 생략하겠지만, 이 분해식에 따르면 이윤율의 분자는 잉여가치율에, 분모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의존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이윤율 하락은 대체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해서 하락하기 보다는, 잉여가치율의 하락에 의해서도 하락했다. 즉 이윤율은 기술진보의 장기적 결과가 아니라, 잉여가치율의 단기적 변동에 따른 결과이다. 그렇다면 잉여가치율은 왜 하락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잉여가치율이 하락한 것은 호황기 이후의 신규투자에 대한 이윤율이 낮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이며, 이는 선대자본의 증가율 보다 고용율이 느리게 증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잉여가치는 산노동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적 감가’에 해당하는 정보기술투자에 대한 감가를 일반 자본손괴에 해당하는 감가와 동일하게 취급해 이윤율이 과대평가된 것도 있다.

하지만 이윤율은 사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공황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간접적인 원인일 뿐이고, 오히려 공황은 신용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번의 경제위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2.

여기까지가 이윤율에 대한 몇가지 쟁점을 요약한 것이다. 빠뜨린 부분들이 있을 수 있으나, 주요한 내용은 모두 적었다. 나는 이윤율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읽으면서 부득이하게 몇가지 참고문헌을 더 찾아보아야했다. 첫째로 그의 주장은 뒤메닐에 대한 내 기억을 다시 확인하도록 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가치와 역사적 가치 사이의 쟁점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나는 뒤메닐의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김덕민의 논문 한편(‘Profit Rates: Current Cost vs. Historical Cost’) 중 일부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하지만 그럼에도 몇몇 대목에 대해서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우선 저자, 클라이먼은 현재가치 이윤율이 축적률과 무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뒤메닐은 뒤메닐에게는 당연하다(사실 저자는 때로는 위송을 겨냥하고 또 때로는 뒤메닐을 겨냥하면서 불리한 부분은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뒤메닐은 이윤율을 이자, 배당 등 자본소득을 지출하기 이전 이윤율과 이후 이윤율인 유보이윤율을 구분하고, 후자가 축적률과 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전자가 축적률과 괴리되는 것은 오히려 뒤메닐의 주장에 근거가되는 핵심적인 지표다. 이윤율이 상승하고 그 소득을 관리자 계층이 점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점마저도 클라이먼에게는 노동-자본 비가 일정하다는 점을 들어, 과소소비설을 비판하는 대목과 상충된다. 전문가, 고위관리직 등을 노동자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클라이먼은 이들의 소득이 증가한 것은 신자유주의 이전부터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개인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목이라고 할만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논하겠다.

뒤메닐에 대해 다소 악의적으로 오도하는 부분은 장기와 단기를 구분할 줄 모른다고 지적하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클라이먼에 따르면 이윤율은 신자유주의 이후 회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율이 회복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시점과 종점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장기와 단기를 구분할 수 없으므로, 경기하강기를 기점으로 하고 경기상승기를 종점으로 선택하면 당연히 이윤율이 상승한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뒤메닐은 그와 같이 설명하지 않았다. 뒤메닐은 ‘현재까지 나온 방법으로’ 시작점과 종점을 자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지정하는 방법은 없고, 따라서 시점에 따라 이윤율 추이가 변하므로, 지속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하였다. 더불어 현재위기 국면에 현재가치 이윤율이 하락하지 않고 상승하였으므로, 이윤율 위기가 아니라고 하였을 뿐이다. 이것은 클라이먼의 악의적인 오도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무지도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어느 누구도 시계열 데이터의 장기와 단기를 그런식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시계열 데이터에서 장기적 경향과 단기적 변동을 수리적으로 구분해낼 뿐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면서 R-squared나 p-value를 들이미는 장면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그는 이윤율이 (다음해의) 축적률을 83%나 설명하고, 통계적 유의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물론 마르크스경제학에 따르면 이윤율(뒤메닐에 따르면 유보이윤율)은 일반적으로 축적률과 상관관계를 가지는 변수임은 맞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그가 이후 지적할 어떤 오류와도 연관이 있어보인다(사실 이 대목은 그의 연구에 대한 신뢰를 빠르게 감가시켰다).

현재가치와 역사적 가치 사이의 쟁점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적인 쟁점들에 대해서 촘촘히 서술하는 것은 본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따라서 뒤메닐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클라이먼의 주장에 집중하고자 한다. 

“One may wonder whether enterprises are victims of this bias. In a world of rising prices, do they systematically overestimate their profit rates due to the survival of components of fixed capital whose value is measured at historical costs. ... Should they go on investing in 2005 on account that the investment would have been highly profitable at nominal 1970 prices? If they decide on the distribution of dividends on the basis of a measure of profits ignoring that depreciations are estimated at historical cost, they will shortly feel the brunt, in the short run, of a liquidity squeeze and, in the long run, of the requirement to collect capital to compensate excess dividend distribution (compare to their ac- tual profits) and be able to continue their activity, at least, at on-going level.”(Kim, 2011에서 Duménil and Lévy, 2011b: 37, 재인용.)

위 뒤메닐의 주장에서와 같이 현재가치 이윤율은 인플레이션을 조정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역사적 가치 이윤율은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는다. 클라이먼도 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본문에서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뒤메닐의 현재가치 이윤율은 인플레이션을 조정할 때, 고정자본의 물가지수를 조정할 뿐, 일반적 물가지수를 조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역시 다소 의구심이 든다. 이윤(율)이 기업의 입장에서 자본축적의 동기가 되고 축적률과 상당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변수라고 하자. 그렇다면 어째서 이윤율은 일반적 물가지수를 조정해야만 하는가.

사실 물가지수는 다양하다.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석유 등 외생적 변수가 되는 상품을 제외한 핵심물가지수 등, 연구의 목적에 따라 사실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는 대목이다. 클라이먼은 일반적 물가수준으로 조정했을 때와, 고정자본 물가수준을 조정했을 때와 70-80년대에 차이가 나타나고 그외에는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분명 어떤 인사이트가 있지만, 현재가치 이윤율에 대한 핵심적 비판이 되지 못한다. 그는 투자에 있어서도 일반적 물가수준으로 나누면 그 차이가 더 커진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같은 문제다. 우리는 이윤율을 반드시 일반적 물가수준에 따라 조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가장 보편적인 물가지수를 사용해야 더 정확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만약 모든 변수에 이와 같이 가격지수를 달리 했을 때, 어떤 지표가 기존의 것과 상당히 괴리된다면, 그것은 그 연구의 체계적인 오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가치 이윤율과 역사적 가치 이윤율에 대한 쟁점 하나만 더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클라이먼에 따르면 역사적 가치는 기업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기업의 회계기준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메닐은 기업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변동성을 평가할 때, 과거 단위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 역자가 한마디를 더한다(클라이먼을 지지하는 듯한 역자가 이런 말을 맥락없이 남겨서 다소 의아하다. 바로 직전 문장에서는 역사적 가치 방법을 지지하는 문장이 적혀있다). “나아가 2007~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기업회계 방식이 기존의 장부가격 기준 자산평가에서 현재 가치 기준 자산평가, 즉 시가평가 방법의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제회계기준으로 전면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p.335). 

3.

이윤율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다른 부분에도 문제가 많다. 이번에는 이윤율 하락 원인에 대한 문제다. 그에 따르면 이윤율 하락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아니라, 잉여가치율의 하락으로부터 ‘주로’ 유발된다. 그 이유는 잉여가치율 하락이 두드러지는데 반해, 자본의 가치구성(역수)은 비교적 완만히 하락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점도 다소 의아하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음에 반해, 자본의 가치구성은 추세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p205), 이윤율 분해에 있어서는 굳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아니라, 가치구성과 비교하고서 이윤율 하락의 원인은 장기적 요인인 기술보다는 단기적 요인인 잉여가치율에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p.202).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잉여가치율이 하락하는 이유는 선대자본의 상승에 비해 고용은 느리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과연 이 문제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전혀 무관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인가? 만약 잉여가치율을 일반적인 방식대로 S/V, 즉 분배율로 취급했다면 의아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는 잉여가치율을, S•ΔE로 환원하여 고용(E)의 문제로 환원하는데, 그것과 기술에 의한 노동대체가 무관하다고 여기는 것은 의아할 뿐이다(그는 명시적으로 이것을 단기적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이윤율이 하락할까. 그는 하나의 비유를 더 든다. 이윤율은 원래 낮았을 뿐이고, 전후 호황기 때 지나치게 높았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사실 전혀 놀랄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설명은 주류경제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 이윤율 하락설을 소개하자 나왔던 반응이기 때문이다. 전후 호황기의 이윤율이 상당히 높았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는 어떤 비밀이 전혀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뒤메닐이 전후 만큼 이윤율이 회복하지는 않았지만, ‘회복했다’고 평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클라이먼의 ‘내로남불’이라고 생각한다. 전후 만큼은 아니지만 얼추 회복했다, 이것 아닌가).

그는 이것을 설명하면서 또 어처구니 없는 통계학적 비유를 하는데, 그가 자신의 비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내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22세 커플이 파티를 열었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 어린 사람들이라, 파티 참석 인원의 평균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비유한다. ‘그렇다면’, 이윤율은 어떤 분포를 가지고 있는 확률변수인데, 대수의 법칙에 의해서, 시간이 지나면 그 분포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평균값에 수렴할 것이란 말인가?

4.

사실 그는 이윤율이 중요하지 않다면서, 이윤율을 집요하게 하락시키고 있다. 모든 주장은 간단하다. 자본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윤율 반등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통념의’ 해석들이 적극적인 케인즈주의로 수렴하고 있음을 비판하지만, 사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놀랍도록 신고전파(혹은 고전파)와 닮아있다. 자본에 대한 수요공급 곡선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Y축은 이윤율(r)이고, X축은 자본(K)이다. 단순화하기 위해 수요곡선은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과소소비설을 부정하므로 합리적인 가정이다. 이제 이윤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공급이 축소해서 좌측으로 이동하는 방법 뿐이다. 그러면 이윤율은 상승하지만 자본은 파괴되어 줄어든다. 반대의 경우는 마찬가지 방식이다.

이윤율과 축적률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다소 모호하다. 그는 이윤율이 축적률(자본의 축적)을 이끈다고도 말하면서, 고용율이 잉여가치율을 올린다고도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다소 이상하다. 고용은 일반적으로 자본투자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묘사는 이윤율이 자본의 축적을 이끌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본축적이 이윤율을 이끌기도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관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뒤메닐과 같이 유보이윤율과 자본축적률 사이에도 유사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실 이윤율과 자본축적은 투하된 자본과 그 자본의 가격으로서 이윤율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말하자면 거의 정의식에 가깝다. 이윤율은 물론 투자가 집행되고 난 이후에 계산이 되지만, 투자량을 결정하기 이전에 예측하는, 또는 요구되는 이윤율이 존재하고, 이것은 사실상 투자결정에 있어서 가격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서, 축적률이 낮으니 이윤율이 낮다, 혹은 그 반대의 주장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 책이 주장하는 요지는 그 짧은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 문제가 클라이먼이 이윤율과 축적률에 대해 설명하면서 말한 통계학적 언급(가령 R-squared)이나 이윤율이 하락하는 이유에 대한 통계학적 비유(즉 파티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에 있어서 드러난 어떤 무지와 유관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윤율이나 축적률이 얼마나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R-squared나 p-value, coefficient 등은 아무 필요도 없다. 딱 봐도 유사한 추세가 보이는 두 그래프를 가지고 그런 회귀분석을 한다는 것은 애당초 넌센스다. 사실 우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유사한 추세를 보이는 두 변수를 회귀분석하면 그런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실제로 풍문에 따르면 황새 개체수와 신생아수의 트렌드가 매우 유사하게 겹친다고 한다). 파티 비유도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이윤율 분포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상정되어 있고, 그 1차 모멘트, 평균값이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무지 혹은 어처구니 없는 악의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즉 나는 저자가 이윤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그는 이윤율이 도대체 무엇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사실 이부분은 이윤율 연구에 대해서 볼 때마다 늘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이윤율이 축적률에 영향을 준다고 말할 뿐이다. 

그의 위기에 대한 견해도 다소 견강부회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윤율이 위기에 있어서 단지 간접적인 관계만 있고 그것은 『자본론』에서도 같다고 주장하면서, 사실 이윤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5.

이제 신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적어도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정치적인 문제를 조금 설명할 뿐이다. 하지만 이점에 있어서도 다소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통념에 가까운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비판한 측면이 있지만, 나는 한번도 신자유주의를 그런 식으로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신자유주의는 처음부터 국가의 개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1979년 볼커의 반혁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위기에 있어서 미연준의 개입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우리는 여기서 금융자본주의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사실 국가자본주의라는 1930년대 뉴딜 정책 이후부터 나타난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거의 레이건 등장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구체적인 연도를 못박는 듯하지만, 이 기간을 보다 유연하게 생각한다면,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 위기에 대한 규제나 국유화에 있어서도 그 효과를 지나치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과소소비설이나, 브레너 등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본 글에서는 쓰지 않았다. 그밖에 몇가지 더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그만 쓰도록 하자.



Reference

Kliman, Andrew. (2012).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한울. 정성진•하태규 역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2011)

Duménil, Gérard; Lévy, Dominique. (2014). 『신자유주의의 위기』. 후마니타스. 김덕민 역. (The Crisis of Neoliberalism, 2011)

Duménil, Gérard; Lévy, Dominique. (1992). ‘The Historical Dynamics of Technology and Distribition: The US Economy Since the Civil War’.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24(2).

Kim, Deok Min. (2012). ‘Profit Rates: Current Cost vs. Historical Cost’. Marxism 21. 2012, 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