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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트

후기: Ernst Lubitsch, <I Don’t Want to Be a Man>, 1918



에른스트 루비치의 영화들을 좀 볼 생각을 하고 있다. 다 볼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 무성영화들은 그냥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화질은 매우 구리지만. 고전영화에 특별히 취미는 없지만, <The Oyster Princess>로 나는 루비치에 꽤 빠졌다. 그리고 간간히 그 후기를 짧게 나마 써보려고 한다.


<I Don’t Want to Be a Man>은 세번째로 본 루비치의 영화이다. 에른스트 루비치는 독일 출신의 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로,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의 1세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많은 영화감독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우디 앨런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에 나오는 필모그래피에 따르면, 첫 영화는 1914년, 가장 마지막 영화는 1948년이다. 1928년 이후 작품부터는 유성영화이고, 유성영화를 찍으면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1940년 <The Shop Around the Corner>이다. ‘모퉁이 가게’로 알려져 있는데, 노라 애프론이 <유브 갓 메일>로 리메이크 한다. 그래서 재판된 DVD에서는 ‘오리지날 유브 갓 메일’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도 한다.


루비치의 사조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는데, 정보가 부족하고, 영화사조는 다소 낯설어서 조금 더 내용을 확인한 후에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1918년작 <I Don’t Want to Be a Man>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상당히 ‘퀴어적’이다. 사실 1918년 영화가 상당히 급진적이라는 생각에 보면서 조금 놀랬다. 주인공은 Ossi로, 극중이름과 본명이 같다. <The Oyster Princess>에서도 Ossi가 Ossi라는 이름으로,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루비치 영화에서 매우 다수 출연하는 것 같다. 영화는 Ossi가 과일을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사랑스럽게 과일을 먹는데, 매우 짧은 장면이지만 사실 꽤 중요한 장면이다. 진정한 Ossi의 본 모습으로, 영화의 수미쌍관적으로 그녀의 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Ossi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남자들과 어울리며, 포커게임을 치고, 술과 담배를 마시고, 괄괄하게 생활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훈계에 참지 못하고, 남장을 하고서 남자행세를 하고 다닌다. 하지만 남자행세도 쉽지가 않다. Ossi가 느끼기에 남자들은 무례하고 거칠었고, 여자들은 경솔했다. 남자도 여자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파티에서 자신이 평소에 마음에 들어 했던 가정교사를 보게 되고, 그에게 접근 한다. 그리고 술김에 둘은 키스까지 해버린다! 그의 가정교사는 다음 날 우리가 키스한 것을 Ossi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결말은 그가 그녀(Ossi)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이 연애를 잘 한다, 뭐, 그런 내용이다.


<The Oyster Princess>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소위 ‘신성한 것’을 희화화하며 공격한다. <The Oyster Princess>는 신분제도와 부르쥬아의 생활을 폭로했다면, <I Don’t Want to Be a Man>에서는 가부장제를 공격한다. 예컨대 Ossi는 여자가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훈계를 듣지만, 그 어머니가 담배를 피워보고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비웃는다. 또한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화가 나는데, 정작 아버지(?)가 술에 취하는 모습을 보며 비웃는다. 그녀의 모습은 남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데, 동시에 그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을 훈계하던 가정교사에게도, 결말에 가서는 그의 말을 똑같이 인용하며, 그를 훈계한다. 더구나 남장을 한 채로 키스를 하는 것은, 이성애중심주의까지도 위배하고 있다.


이런 급진적인 루비치의 면모는 1940년작 <The Shop Around the Corner>에서는 많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이 다분한데, 이는 조금 더 숙고해볼 일이다.


사실 20세기 전반기 무렵 영화는 꽤 흥미롭다. 흔히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1980년대를 그 기점으로 잡는다. 혹자는 우디 앨런의 1977년작 <Annie Hall>을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시작으로 평하는데(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7749), 이는 시기상으로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리고 이 로맨틱 코미디의 원류를 1930년대 ‘스크류볼 코미디’로 꼽는다.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나는 스크류볼 코미디의 가장 전형적인 영화가 1938년 하워드 혹스의 <Bringing Up Baby>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류볼 코미디는 1926년 유성영화가 최초로 도입된 이후 등장한 것으로, 유성영화의 특성을 살리는, ‘빠른 대사’가 특징이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 입씨름을 하면서, 결국에는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무렵 여성주의 운동의 부상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자유연애는 물론이고, 여성들이 남자들에 말에 지지 않고, 비꼬고, 놀리고, 입씨름을 하는 것이 영화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여성운동을 염두해둘 때, 당시 무성영화에서 비록 스크류볼 코미디와 같은 ‘빠른 대사’를 활용한 농담은 없지만, <I Don’t Want to Be a Man>의 성격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이유이다. <The Shop Around the Corner>도 많이 희석되었지만, 스크류볼 코미디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정치적 한계들도 엿보이는 것 같은데, 시대적인 한계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영화들에서 ‘신성한 것’을 희화화하면서도, 갈등을 ‘봉합’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면모들이 있는데, 이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져보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